원자바오도 신발 맞을 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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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2일(현지시간) 유럽 순방 중에 ‘독재자’라는 비난을 듣고, 연설 도중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이 ‘신발 투척 봉변’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AFP와 BBC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원 총리는 이날 마지막 방문국인 영국에서 세계 경제를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명문 케임브리지대 캠퍼스를 찾았다. 유학생이 중심이 된 친중파 시위대에 맞서 반중파 시위대는 중국의 인권 탄압과 티베트 통치에 항의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강연장에 들어선 원 총리는 차분하게 강연을 시작했다. 그런데 연설 도중에 한 청년이 원 총리를 향해 신발을 던지며 “(이런 행사는) 수치스럽다”고 외쳤다. 청중석 뒤쪽에서 날아간 신발은 원 총리의 전방 1m 지점 단상에 떨어져 원 총리가 맞지는 않았다.

티셔츠 차림을 한 27세의 이 서양인의 정확한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보안요원들이 달려들어 청년을 제지했다. 청년은 끌려나가면서도 “여러분은 어떻게 독재자가 하는 거짓말을 듣고 앉아 있느냐”며 소리쳤다.

연설을 잠시 중단했던 원 총리는 분위기가 수습되자 연설을 재개했다. 원 총리는 “이런 ‘졸렬한(卑鄙)’ 행동으로는 중국과 영국의 우정을 막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강대해지면 패권을 추구한다는 말은 중국에 맞지 않다”며 “나라와 민족이 달라도 서로 존중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 유학생이 대다수인 청중이 박수를 보냈으나 중국 방송들은 이런 장면을 중국 내에 보도하지 않았다.

영국 BBC방송은 “지난해 12월 바그다드에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도중 이라크 언론인이 부시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사건과 유사하다”고 논평했다.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은 3일 “(신발 투척 사건에 대해)영국 정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으며, 영국 정부가 유감을 표시하고 처벌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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