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 “난 부시의 유산 … 선거에 악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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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콘돌리자 라이스(사진)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미국 역사상 첫 흑인 여성 국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지난해 대선 당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선출직 자리에 관심 없다”는 말로 논란을 잠재웠다. 그러나 뒤늦게 드러난 그의 속내는 조금 달랐다. 부시에 대한 미 국민의 부정적 이미지가 자신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현실이 그의 발길을 잡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라이스 전 장관의 전기를 펴냈던 뉴욕 타임스 기자 엘리베자스 부밀러는 최근 이 책의 문고판을 내며 첨가한 후기에서 지난해 말 라이스와의 독점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라이스는 지난해 상반기 백악관에서 열린 한 모임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을 만났다. 당시 매케인은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고, 라이스는 언론에 의해 주목 받는 부통령 후보였다. 라이스는 매케인과 가볍게 잡담을 나누다 이렇게 말했다. “존, 우리 둘은 모두 ‘당신이 내가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요.”

라이스는 부밀러에게 “나는 부시 유산의 큰 부분이었다”며 “매케인이 이 문제를 더 진전시켰더라면, 그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좋은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라크 전쟁에 깊숙이 개입한 자신의 이미지가 매케인의 선거전략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음을 토로한 것이다.

부밀러는 “의심할 여지없이 라이스는 겉으로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부통령직에 관심을 보였다”며 “정치적 현실주의자인 라이스가 인기 없는 부시와 연결된 자신의 모습을 본 뒤 매케인에게 보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 자신의 야망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부밀러는 자신에게 밝힌 라이스의 향후 계획도 의미심장하다고 적었다. 라이스는 “일단 공직 생활 전 몸담았던 스탠퍼드 대학의 후버 연구소로 돌아가 미국 외교정책에 관한 학문적인 책을 쓰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라이스는 자신이 이미 설립해 놓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센터’를 확장시켜 가난한 히스패닉과 흑인 학생들의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 지원에 대대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부밀러는 “가난한 소수자들의 교육에 집중하겠다는 포부가 그의 이상주의적 성격과 정치적 야심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했다.

라이스는 최근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으로 대형 연예기획사인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와 계약을 했다. 저술과 강연, 자선사업 등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서다. 버락 오바마 흑인 대통령의 탄생에 이어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 자리도 처음으로 흑인(마이클 스틸)에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흑인 여성인 라이스가 차기 대선에서 주목 받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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