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상품 수출만으론 한계 종합상사들 高기능화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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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삼성물산은 지난해말 미국 휴스턴지사에서 국산철강을 팔던 주재원을 철수시켰다.10년전 6명에 이르던 철강 담당자가 점차 줄다 마지막 한명까지 철수한 것이다.

대신 현지채용 직원에게 철강업무를 맡기고 있다.삼성물산의 철수조치로 국내 7대 종합상사의 한국산 철강담당 주재원은 모두 철수한 셈이 됐다. <그래픽 참조> 미국시장에서 국산 철강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다보니 주재원 한명의 경비도 나오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이처럼 90년대 들어 미국시장에서 우리상품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면서 종합상사들이 미국시장에 내다파는 한국상품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대신 종합상사들은 석유화학.비철금속.곡물등의 3국간 거래,고철.쇠고기.곡물등 원자재의 한국수입,자금조달(파이낸싱).기술도입.현지합작 업무등 기능고도화에 몰두하고 있다.

동국대 무역학과 이승영(李勝榮)교수는“단순상품거래에서 이득을 취하는 식의 종합상사 업무는 한계에 봉착한지 오래”라며“3국간 거래업무등으로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현지화를 촉진할 뿐더러 상사기능의 고도화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상사기능이 이처럼 급속히 바뀌게된 것은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상품들은 국내 메이커들이 상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수출하거나 현지판매하는 데도 원인이 있다.

현대종합상사 뉴욕 현지법인은 5년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의류.완구등 국산제품을 연간 1억달러어치정도 가져다 미국시장에 팔았으나 지난해는 그 절반인 5천만달러정도에 그쳤다.품목수도 10가지 이상에서 3가지로 줄었다.

삼성물산 미국지사에서는 현재 영창피아노를 제외하곤 일반상품을 취급하는 주재원이 한명도 없다.

LG상사 뉴욕법인도 90년엔 섬유.가전제품.일반기계.석유화학등의 주력상품을 4천만달러어치 내다팔았으나 지난해는 2천만달러 이하로 줄었다.섬유제품의 경우 90년엔 국산이 2천만달러어치에 이르렀으나 지난해에는 대부분 중국이나 동남아산 제품으로 바뀌었다.특히 신발.완구.식기류.식품등 경공업제품은 취급품목에서 사라졌다.

효성물산의 한 관계자는“상품대금 미수금을 안고있지 않은데가 없고 최근 몇년 사이에는 한국상품 장사가 잘 안되다보니 종합상사의 미국현지법인 치고 재무상태가 좋은 곳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올해초 뉴욕지사에서 귀임한 무역협회의 김욱동(金旭東)인천지부장은“종합상사가 장사가 안돼 한국제품을 포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미국시장에서 한번 발을 빼면 다시 들어가기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일본상사들은 일본제품을 미국으로 가져다 파는 단순상품거래는 부가가치가 낮아 10여년전부터 손을 떼고 원료공급,현지투자,자회사를 통한 거래등의 업무로 탈바꿈했다.일본상품 수출은 대부분 메이커들이 직접 한다.

우리 상사들은 국산품의 경쟁력 약화가 변신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일본상사들은 상사기능의 고도화차원에서 스스로 먼저 변신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한국 종합상사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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