州정부 안락사 금지 합헌.음란물 규제 위헌 미국대법 권위 절정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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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 대법원이 요즘'법의 권위'를 한껏 과시하고 있다.

휴가철을 앞둔 판결 일정에 따라 그간 산적해 있던 굵직한 판결들을 한데 몰아 내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스캔들에 휘말려 있는 백악관이나 입씨름이 빈번한 의회등에 비해 미 국민들로부터 상대적으로 더'권위'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3권 분립체제 아래서 행정부.의회를 견제하는 대법원의 역할은 최근 여러 곳에서 돋보였다.

지난달 말에는 성추행사건과 관련,클린턴 대통령이 재직중 면책특권을 가질 수 있느냐는 논란에 대해 “임기중의 대통령이라도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결정을 내려 박수를 받았다.

대법원은 이어 한달여 뒤인 지난 26일 클린턴에게 항목별 거부권(의회가 제정한 법안의 일부 조항을 골라 행사할 수 있는 거부권)을 인정,행정부에 대한 의회의 지나친 견제에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은 또 같은날 문제가 돼온 안락사 허용에 대해 전원합의로“각 주당국은 안락사를 금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뉴욕주및 워싱턴주 항소법원의 결정을 뒤엎는 것으로 그동안 미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안락사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하는 셈이다.대법원은 이어 행정부.의회가 함께 추진해온 것으로 인터넷상의 음란물 규제를 골자로 하는 '연방통신품위법'이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음으로써 인터넷의 장래에 관한 중대한 매듭을 지었다.

27일에는 클린턴 대통령이 중요정책으로 추진해온 권총휴대제한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앞서 25일“의회가 헌법상에 규정된 종교의 자유문제를 정의.해석하는 것은 사법부에 주어진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93년에 의회가 제정한'종교의 자유 회복법'의 무효를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에 대해 종교단체.의회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최근들어 대법원의 위상이 강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법학자들은“종신직인 대법관들은 정치인들처럼 늘 대중을 상대하며 재선과 정치자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국민들이 식상해 하는 '정치의 늪지대'에 발이 빠져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워싱턴=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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