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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코소 일본문화 <10>아이돌 팬으로 살아남기, 한국 vs 일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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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호 07면

아이돌의 팬으로 산다는 건 고달픈 일이다. 특히 빅뱅·동방신기·원더걸스 등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 티켓 예매가 한창인 요즘 같은 시즌에는 그 괴로움이 배가 된다. 10분이면 ‘전석 매진’되는 표를 구하기 위해 ‘검지에 관절염 걸리도록’ 클릭질을 해댔다는 슬픈 사연이 줄을 잇는다.

한국에 비하면 일본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 구하기 전쟁은 훨씬 조용히 치러진다. 바로 ‘파미쿠라(パミクラ·줄여서 ‘파미’)’라는 굳건한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파미쿠라’는 ‘패밀리 클럽(Family Club)’의 일본식 발음인 ‘파미리쿠라부’의 준말인데 스마프·아라시·캇툰 등 유명 남성 아이돌 그룹들이 소속된 거대 기획사 쟈니스에서 운영하는 팬클럽을 일컫는다.

각 그룹의 파미에 가입하려면 연회비만 4000엔 정도를 내는데, 이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혜택은 콘서트 티켓 응모 자격이다. 일본에서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정해지면 일단 파미들을 대상으로 신청받아 자리를 배정하고 남는 좌석이 있을 때만 일반에게 티켓을 판매한다.

재밌는 건 매뉴얼과 규칙을 신봉하는 일본인들의 특성이 ‘팬질’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학업이나 직장 활동을 전폐하고 연예인들의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는 행위를 ‘옷카케(おっかけ·뒤를 쫓는다는 뜻)’라고 하는데, 옷카케를 일주일에 네 번 이상 하는 ‘광팬’을 ‘오리키(オリキ·옷카케의 ‘오’에 ‘리키(力)’를 붙인 말)’라고 부른다.

오리키들에게는 책으로 내도 될 만큼의 수많은 규칙이 있다. 집 앞에서 기다리기 금지, 사진촬영·사인요청 금지 등이 대표적인데 스케줄에 바쁜 스타들을 배려하는 취지다. 규칙 중에는 방송국에서 스타를 기다릴 때 간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쓰레기 때문에 지저분해지므로), 오후 10시 이후에는 10대 연예인들의 뒤를 쫓아서는 안 된다 등의 세세한 것도 있다. 규칙을 어길 시 대장 오리키에게 불려가 엄격한 ‘응징’을 당한다고 전해진다.

질서와 배려라는 측면에서는 뒤질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팬의 요건인 ‘열정’에서는 역시 한국 팬들을 따라올 자가 없다. 지난해 아라시(사진)의 한국 콘서트에 원정응원을 왔던 일본 오리키 언니들 역시 일사불란한 한국 팬들의 집단 추임새와 끝나지 않는 앙코르 요청에 ‘스고이, 스고이(대단해)’를 연발했다나 뭐라나.


‘오타쿠’라 불리는 일본의 매니어 트렌드를 일본문화 전문가인 이영희 기자가 격주로 ‘코소코소(소곤소곤)’ 짚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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