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불경기' 와는 다른 '경제 위기' 뭔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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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요즘 '경제위기'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노무현 대통령은 "과장된 경제 위기론이 진짜 위기를 부르고 있다"고 말해 지금은 경제 위기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과 네티즌들은 "지금은 위기 상황"이라고 주장합니다. 경제와 관련한 온라인 게시판이나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경제위기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논란을 접하면 머리가 갸우뚱해지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경기가 좋다, 나쁘다"란 말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지금이 확장국면이다, 또는 수축국면이다"라고도 합니다.

비슷한 의미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다른 뜻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립니다.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나=올 1분기에 우리나라 경제는 5.3% 성장했습니다. 지난해 전체적으로는 3.1% 성장했고요. 이런 수치를 놓고 사람들은 경제가 좋다, 나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경제는 상황에 따라 호경기와 불경기가 반복됩니다. 이것을 경기순환(business cycle)이라고 합니다.

그림에서 보듯 경기는 회복(recovery)→호황(prosperity)→후퇴(recession)→불황(depression)을 되풀이합니다. 이 중 회복→호황 구간을 확장국면이라고 하고, 후퇴→불황 구간을 수축국면이라고 합니다.

경기가 확장하는 국면에는 경제활동이 활발합니다. 회복기에는 상품거래가 늘고 투자나 생산은 상승기미를 보입니다. 물건을 많이 생산하려면 근로자를 더 고용해야겠죠. 당연히 실업은 줄기 시작합니다.

호황기에는 투자가 활발해지고 생산재와 소비재의 생산이 증가하며, 금리나 물가는 올라갑니다. 고용도 늘어나고 임금도 오르겠죠.

후퇴기에는 생산은 되는데 소비자들이 사주지 않습니다. 과잉생산으로 재고가 늘겠죠. 물건이 안 팔리니 기업의 수입이 줄어 투자도 꺼리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불황기에는 투자가 뚝 끊기고, 공장도 덜 돌리고 손을 놓게 됩니다. 물건을 만들어봤자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업원들은 실직을 하고 주가도 떨어집니다.

불황이 극심한 경우는 따로 공황(depression)이란 표현을 씁니다. 1929년 미국에서 주가가 폭락하고, 실업률이 25%까지 뛰었을 때는 특별히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경제성장률만으로 경기순환의 어떤 단계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정확히 꼬집어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경제학 교과서('맨큐의 경제학'), 에서는 경제성장률이 2분기 연속 하락하면 경기후퇴기에 들어가고 2년에 걸쳐 하락하면 불황기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구조가 워낙 복잡해 이렇게 도식적으로 경제상황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통계청의 김민경 경제통계국장은 "경제성장률과 생산.도소매판매.소비 등 다양한 지표들을 종합해 경기를 판단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지 않고는 경기의 국면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이후 이런 경기순환이 일곱 차례 되풀이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란?=이제 어느 때를 위기라고 부르는지 고민해보죠. 우선 '경제위기'라는 말은 정치사회적 용어이지 경제학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위기의 사전적 의미는 '위험한 고비'입니다. 이 뜻을 따오면 '경제위기란 경제가 위험한 고비에 처한 것'을 말합니다.

이쯤 되면 다시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위험한 고비에 처한 경제는 또 어떤 경우를 말하는지 혼란스럽죠.

경제사 및 국제경제분야의 대가였던 미국의 찰스 킨들버거는 경제위기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경제위기란 불경기와는 달리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 발생해 경제가 전체적으로 붕괴하거나 기능이 마비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김승욱.김재익 등 지음, '시장인가 정부인가')

이런 정의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1979~80년(2차 오일쇼크와 10.26사태)과 1997~98년(외환위기)에 경제위기를 겪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79~80년의 위기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1997~98년의 외환위기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안정상태에서 갑자기 닥쳤기 때문에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실이 드러나면서 우리나라가 갖고 있던 달러가 바닥나자 해외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됐죠. 이 여파로 원화 환율이 폭등하고, 금리가 급등하는 등 악순환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경제의 기능이 마비돼 작동되지 않은 결과 1998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6.7%로 떨어졌습니다.

중앙대 김승욱 교수는 "수출이 잘되고, 경제 성장률이 올라가더라도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 국민이 위축된다면 경제가 좋아질 리 없다"며 심리적 불안감이 경제위기를 부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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