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못하는 동물 광고모델들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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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41면

"이제 더이상은 못 하겠어요.”

미국 LA 근교에 사는 일곱살짜리 표범 티슈어가 절규한다. 꼬박 이틀을 굶겨놓고 주먹만한 쇠고기로 유혹하면서 이리저리 뛰라니 미칠 지경이다. 참 독한 한국의 광고쟁이 아저씨들-.

복사기에 표범사진을 올려놓고 버튼을 누르면 실물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찍는 거라나.배부르면 좀처럼 꿈쩍 하지 않는게 맹수들 속성이란 걸 뻔히 알면서 굳이 표범을 모델로 선택한 속셈은 뭐람.“고작 6초 나오는 걸 가지고 이틀동안 쫄쫄 굶기는 게 어디있어요.”

표범의 하소연은 도미의 설움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다.“제주도 푸른 바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다 그물에 잡혔어요.헬기로 서울까지 급송됐죠.한데 들리는 얘기가‘물밖에서 똑바로 선채로 퍼덕거려야 한다’더군요.우린 몸이 칼날같아서 바로 서 있을 수가 없는데….궁금증은 친구의 처절한 촬영모습을 보는 순간 사라졌죠. 기다란 쇠꼬챙이가 삐쭉삐쭉 솟아있는 도마를 꺼내더니 친구의 배를 푹 찔러 세워놓는거예요….죽음의 문턱에서 몸부림치는 내 친구를 보면서도 감독이란 양반은 ‘움직이는 게 약해’라며 얼굴을 찌푸리더라구요.그러더니 사람들이 꼬챙이에 전선을 연결하곤 1백V 전기를 찌리릭-. 나머지 30마리도 같은 모습으로 죽어갔어요.‘학살’이 끝난 뒤 감독이 던진 한마디가 뭔지 아세요?‘모처럼 회나 실컷 먹자’예요.어떻게 이런 일이.엉엉.”

사연은 안타깝지만 어찌하겠나.소비자의 관심과 호감을 끌어내는데 3B(Beast=동물, Beauty=미인, Baby=아기)가 최고라는 게 이미 광고계의 정설로 굳어버린 걸. <관계기사 42면>

물론 우리나라 동물들이 고초가 심한 것은 사실이야.외국에선 동물보호론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니까 함부로 때리거나 죽이질 못하거든.

최근 인기를 끈 TV 수상기 광고 하나.갖가지 야생동물이 사막에 놓인 TV속의 오아시스를 실제인 것으로 착각해 몰려든다.그중 사슴 한마리가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토인들이 나타나 전원을 끄고 잡아간다.미국에서 무려 1억6천여만원이나 들여가며 촬영한 이 광고의 클라이막스는 사슴이 화면 속에서 버둥거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선 이 장면을 찍지 못했다.동물학대는 절대 안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하는 수 없이 무대는 한국으로 옮겨졌다.사슴 한마리를 비좁은 유리상자에 넣었다.느닷없는 사태에 놀란 사슴은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고 그제야 만족할만한 장면이 나왔다.촬영 직후 사슴은 너무도 억울했는지 길길이 뛰며 철책에 머리를 들이받고 자살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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