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학년도 고려대 입학시험 논술 모의고사 - 인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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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고려대는 22일 오전 서울지역 18개 고교와 2개 입시학원 수험생 6백6명이 응시한 가운데 98학년도 입시 논술모의고사를 실시했다.모의고사는 인문계와 자연계 각각 1문제씩 출제됐다.예시문은 원고지 5~16장 정도 분량이었다.문제는 수험생의 종합적인 이해와 분석능력을 묻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답안은 1백50분동안 원고지 1천6백자 내외로 작성해야 한다. 고수석 기자

언어는 문화를 추상(抽象)하여 전파(傳播).전승(傳承)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다시 말하여 문화는 언어의 추상에 의하여 표현되고,그 표현을 통하여 이웃으로 전파될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전승되는 것이다.우리는 여기에서 언어와 문화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가령 우리가 집이라고 할 때 그것은 실제의 집 그 자체가 아니라'집'이라는 언어로 추상되어 있는 것이다.만일'집'이라는 낱말이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집을 가리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집을 짊어지고 다닐 수 없으니 말이다.실제의 집을'집'이란 말로 명명하여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가를 가히 알 수 있다.'집'이라는 것은 말이지 실체가 아니다.마치 지도가 실제의 지형이 아닌 것과 같다.언어의 추상은 문화의 집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가령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종족은 무지개의 빛깔을 세 가지로 표현한다고 한다.우리의 옛 기록에는 무지개를 오색으로 표현하였고,최근에는 일곱 가지 빛깔로 표현하는데,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무지개가 실제로는 어디 일곱 빛깔만이겠는가? 과학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훨씬 더 많은 빛깔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무지개를 언어로 추상할 때 문화권에 따라 이렇게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그것은 무지개라는 현상을 인식하는 문화의 차이에서 말미암은 것이다.우리의 경우도 한자의'청(靑)'과'녹(綠)'에 대해 우리말의 구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푸르다'라는 말이 있을 뿐이다.'하늘도 푸르고 풀도 푸르다'라고 표현한다.빛깔의 색상이 엄연히 다른데도 이 두 가지 빛깔에 대한 우리말은'푸르다'뿐이다.그리고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이것이 바로 세계인식(世界認識)의 차이이며 문화의 차이이다.

이러한 세계인식의 차이는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사촌이라고 할 때,우리는 친.외.내종.이종등 네 가지로 구분한다.영어에서는'cousin'으로 이를 통틀어 표현할 뿐만 아니라,일가.재종.삼종까지도 뜻한다고 한다.가족관계에 대한 표현에서 우리말이 저들보다는 좀더 섬세하게 되어 있다.그러한 관계를'cousin'이라는 하나의 낱말로 나타내기보다는 사촌은 물론 다른 가족관계까지 좀더 자세히 표현하여 분별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이고,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저들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언어는 공간적으로 서로 차이를 가질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변화한다.그것은 생활환경이 바뀐 때문이라 할 수 있다.고시조(古時調) 가운데 다음과 같은 작품이 있다.

一身이 쟈 엿더니 물ㄱ것 계워 못 리로다 琵琶 것튼 빈蛾삿기 使令 것튼 등에 어이 갈귀 위약이 센 박퀴 누룬 박퀴 핏겨 것튼 가랑니며 보리알 것튼 수퉁니며 듀린 니 갓 니 쟌 벼룩 倭벼룩 는 놈 긔는 놈에 다리 기다헌 모긔 부리 족 모긔 딘 모긔 여윈 모긔 그림아 록이 甚한 唐벼루에 더 어려웨라 그 에 아 못 견 쏜 五六月 伏다림에 쉬린가 노라 여기 나타나는 물것의 이름을 지금 세대가 얼마나 알까? 빈대가 사라진 지는 오래 전이 아닌가 한다.모기의 종류도 여기서는 부리가 뾰족한 모기와 다리가 긴 모기 등으로 나누고 있으나,현재는 일반 모기와 뇌염 모기 정도의 분류나 인식이 가능하지 않은가 한다.그만큼 생활 환경이 바뀐 것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음운(音韻)과 의미(意味)의 변화도 일어난다.'곳'이란 낱말은'꽃'으로 경음화(硬音化)되었고'갈'은'칼'로 격음화(激音化)되었다.의미의 전달을 더 강하게 하려는 의도가 이러한 현상을 빚은 것이라 생각된다.음운만이 아니라 뜻의 변화도 보인다.'사랑한다'는 말이'생각하다'라는 일반적 의미에서'특별히 좋아하고 생각하다'라는 좁은 의미로 변해 버렸다.'감추다'라는 말 역시 그러하다.원래'감추다'라는 말에는'저장'의 뜻이 있었으나 이제는'남 모르게 숨겨두다'라는 뜻으로 쓰인다.저장하는 것을 남 모르게 하다 보니 그렇게 뜻이 변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면서 새로운 낱말이 생겨나는 것도 또한 당연하다.새로운 사물의 생성이나 문화의 변화가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학술용어를 만들어 쓴다든가,작가들이 그들의 표현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고,언중(言衆)들도 필요에 따라 말을 만들어 쓰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이렇게 말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은 언어가 문화에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고 있다.그래서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또 그 말이 매우 자연스럽게 들린다.바야흐로 우리는 지구촌에서 서로의 문화를 꽃피우며 행복한 미래를 추구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그리하여 서로간의 문화가 교류되면서 그 문화를 추상화한 언어도 유입되고 있다.이에 따라 우리의 언어에도 여러 가지 외래어가 들어오고 있어,이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위의 예시문을 참고하여,다음을 논제로 삼아 논술하시오. 논제:언어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통시적인 성찰에 입각하여,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한 언어 사용의 방향을 제시해 보라.〈유의사항〉1.논제와 성명은 쓰지 말 것.2.글의 길이는 빈 칸을 포함하여 1,600자 안팎이 되게 할 것.3.예시문 속의 문장을 그대로 쓰지 말 것.4.수험생 개인의 가치관은 원칙적으로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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