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정치와 法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3류잡지처럼 소위 대권주자들에 관한 가십성 기사로 지면을 꽉 메운 신문을 보노라면 그들 대부분의 교육배경이 법학이어서 그런지 법치(法治)에 관한 언급이 많다.그런데 국민의 소박한 반응은 법대로 처리한다고 하면 융통성 없이 원칙만 고수함을 뜻하고,따뜻한 법치란 온정적이고 신축적인 법적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만일 법대로 하자는 것이 항상 법의 무조건적이고 획일적 적용만 뜻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형평이라고까지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정치를 불필요한 것으로 보는 퇴행적 법만능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과거 노동문제같이 정치적.경제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대법원 판례대로만 처리하겠다는 주장이 그러한 예라고 하겠다.반면 따뜻한 법치는 법에도 인정과 눈물이 있는 만큼 때로는 융통성있는 적용을 통해 실질적 정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법의 정의롭고 자애로운 적용보다 일단 정권을 잡은 사람이나 공권력이 편의적 법적용을 할 일반적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법치주의란 명함을 내밀기도 어려웠다.법제정 과정은 민주적 의견수렴 없이 정부의 일방적 정책방향을 반영하거나 정권유지를 위한 입법의 계속으로 국민과의 괴리가 너무 컸고,법집행 과정은 법을 국민을 얽어매는 통치수단으로 보는 공무원에 의해 자의적.형식적.편의적으로 운영됐다.게다가 지키기 어려운 요건을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으로 늘어놓아 국민이 관계법을 숙지하고 준수하려 해도 불가능했다.예컨대 세법의 조문을 읽고 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따라서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 최우선 순위는 당연히 법치주의의 확립이었어야 함에도 통치권자는 법에 의해 법대로 다스리는 대신 인치(人治)중심의 국정을 운영했고,정부기관들이 법을 멋대로 집행하는 태도도 여전해 국민을 깊은 실망과 혼란에 빠지게 했다.또한 법으로 다스릴 문제와 정치력을 발휘해 해결할 문제를 구별 못하고 통치권력의 핵심부에 연결되는 중대사안이 터질 때마다 법치와 정치를 거꾸로 적용해가면서 정권안보를 도모해온 군사독재시대의 수법이 아직도 답습되는 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법적 사고와 정치적 사고가 뒤바뀌면 법이 이뤄내야 할 정의는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리고,정치적으로 달성해야 할 유연성은 법적

사고의 질곡 속에서 얼고 굳어질 수밖에 없다.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그리고 한보게이트와 김현철게이트의 국정조사등 사건처리 과정을

보면 법치와 정치의 역할이 뒤바뀐 경우임을 알 수 있다.역대정권마다 검찰은

정치를 하고 국회는 수사적 성격의 조사를 하는 역할 변환을 통해 검찰은

정치적 곤경을 모면하고 정치권은 검찰이 빼드는 형사소추의 칼날을 피할 수

있어 정권과 함께 편리하게 상생(相生)해왔다.그러나 그동안 법의 무시.왜곡

또는 편의적 집행에 익숙한 국민은 사법당국을 불신하고 정치권의 무능을

지탄하면서 법이란 골치아프고,딱딱하며,얽어매는 것으로 이해해

적대감까지 갖게 됐다.

또한 지난 한세대 동안 우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됐던 물질적 성장에

걸맞게 사회 각계의 정신적 지도관리의 틀과 제도가 성숙되지 못한 결과

정당.법조.언론등이 몹시 낙후돼 법에 대한 불신감을 부채질한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법은 기본적으로 사회평화와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면서

국민에게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주는 규범이다.원래 고전적 법치주의는

군주의 전제정치를 제한하려는 데서 출발했으므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법률로 행정을 규제해 방만하고 자의적 정부운영을 통제함이

그 목적이다.

물론 우리는 이같은 뜻의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한편 좀더 적극적 의미의

법치주의도 모색해야 한다.세계화 시대에는 주로 민간창의에 의해 국경을

뛰어넘는 무한대의 경쟁을 해야 하므로 법은 이들의 활동무대를 틀지어주고

그 무대에서 경쟁하는 자들을 위한 공정한 경기규칙을 제공하게 된다.

세계무역기구(WTO)시대에는 정치적 편법이 통하지 않으므로 법과 계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결국 법치주의만이 더디고 성에 안차는 것 같아도

고효율.저비용 및 선택권의 확대를 보장하는 궁극적 국가운영원칙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송상현 서울법대학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