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홍승엽의 '댄스 씨어터 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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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전치사 '온(On)'은 어떤 상태의 지속을 의미한다. 방송 진행 중임을 뜻하는 'On Air'는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용법 가운데 하나다. 요즘 흔한 '온/오프라인'의 '온'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이를 무용단 이름에 붙이면 '한국의 대표적 현대무용단'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바뀐다. '댄스 씨어터 온'의 '온'은 원래 영어 전치사에서 따온 말인데, 순우리말로 보면 '전부' '모두'를 뜻하는 '온세상'의 그 '온'과 통한다. 아무튼 '댄스 씨어터 온'은 무용의 항구적인 지속 상태이면서 그곳에는 무용의 온세상을 꿈꾸는 자의 바람이 담겨 있다.

이런 중의적인 의미의 무용단을 만든 사람이 남성 무용가 홍승엽(42)씨다. 그를 한국 현대무용의 독보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다면, 감히 '나에게 돌을 던질 자'가 누구인가. 무용 프로페셔널리즘의 관점에서 그는 한국 현대무용에서 독야청청한 이름이다.

홍씨는 무용계의 복잡한 학벌 역학관계로부터의 독립성, 창작열, 진취성, 그리고 무용미학의 세련미와 완성도 면에서 최고점을 받을 만한 인물이다. 중.고.대학에서 무용교육을 받지 않은 '비전공자'로서, 지난해 '프로들이 선정한 우리 분야 최고'(동아일보)로 뽑힌 것을 보면 무용계 내부 평가도 좋은 편이다. 홍씨는 공학도(경희대)에서 뒤늦게 무용으로 전향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분신이요, 무용의 실현체인 '댄스 씨어터 온'이 올해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1993년 당시 속옷 광고 모델로 받은 3000만원을 털어 연습실을 마련하고, 이듬해 창단 공연('김노인의 꿈' '말하지 않은 말의 세 번째 질문')을 한 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지난 것이다. 댄스 씨어터 온은 창단 공연 해를 기념 원년으로 삼아 17~18일 LG아트센터에서 10주년 공연을 한다. 공연작은 우수 레퍼토리를 모은 '모자이크'와 신작 '싸이프리카'다.

우리 인생사에서 외길 10년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이에겐 그가 속한 사회의 악조건에 따라 10년이 100년 정도의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홍승엽씨의 지난 10년이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에서 '전업' 직업 무용가의 길이라는 게 다름 아닌 형극(荊棘)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 그 길을 가는 이가 거의 없다.

언젠가 홍씨는 필자에게 "학교(대학)의 유혹에 더러 흔들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는 전업의 세계에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지나 온 길이 그랬듯이 앞으로 10년도 그러리라 예상하지만, 행여 세파에 넘어지면 어쩌나…. 그저 그를 지탱해 줄 힘은 애정 어린 관객밖에 없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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