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박영준, 국정 실무 ‘컨트롤 타워’ 특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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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호 03면

이명박(MB) 대통령의 ‘차관정치’ 구상이 현실화됐다. 집권 2년차를 맞아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예고한 이 대통령이 정책 추진의 주된 동력으로 ‘실세 차관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본지 1월 4일자 3면>

MB ‘차관정치’ 구상 현실로

지난주 두 차례에 걸쳐 단행된 차관급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실세 차관의 전진 배치를 통한 국정 장악’이다. 이번에 임명된 차관급 인사 21명 중 6명이 ‘왕의 남자’다. 박영준(사진) 총리실 국무차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MB의 심복. 청와대 1기 기획조정비서관을 맡았다가 지난해 6월 ‘권력 사유화’ 논란으로 잠시 야인으로 돌아간 뒤 7개월 만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도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출신이다.

허경욱 국책과제비서관과 민승규 농수산비서관은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청와대에서 1년간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현직 비서관들이 곧바로 해당 부처 차관으로 옮겨간 것이다. 장수만 신임 국방부 차관도 인수위 전문위원을 지낸 ‘MB맨’이다. 대선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747’로 대변되는 MB노믹스 입안에 일조했다.

주목할 점은 이 대통령이 실세 차관들을 요직에 전략 배치했다는 점이다. 교과부는 교육경쟁력 강화, 재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이란 현안을 풀어 가야 한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먹거리 파문으로 홍역을 앓았고 국방부는 군 조직 개혁이란 해묵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이 대통령이 2년차 정국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가장 믿을 만한 인물을 최전선에 내세운 것이란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영준 차장이 있다. 이 대통령의 차관정치 구상은 매주 목요일 오후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리는 차관회의에서 구체화된다. 그 다음 주 화요일 열리는 국무회의 메뉴가 사실상 여기서 결정된다. 차관회의는 장관급인 국무총리실장이 주재한다. 하지만 실무는 사실상 국무차장이 총괄한다. ‘박영준 국무차장’ 카드의 숨은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실세 차관들을 이끄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국정 실무의 대동맥을 장악하라는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셈이다. ‘왕 비서관’에서 ‘왕 차관’으로 변신한 그의 말 한마디에 관가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차관정치에는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그대로 묻어난다. 이 대통령의 최근 화두는 ‘속도전’이다. 지난해 촛불시위로 허비한 시간을 올해 모두 만회하겠다는 심산이다. 새해 업무보고도 지난 연말에 모두 끝냈을 정도다. 이처럼 한시가 아까운 상황에는 덩치 큰 장관보다 발 빠른 차관이 ‘돌격내각’에 제격이다. 당장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하고 임명된 뒤에도 국회와 여론을 챙기는 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믿는 측근은 대부분 40대 후반이다. 한창 맹렬히 뛰어다닐 나이에 장관이란 무거운 옷보다는 차관이란 자리가 훨씬 어울린다.

하지만 우려도 적잖다. 실세 차관과 실세 아닌 장관의 궁합이 오래 지속되긴 쉽지 않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러잖아도 존재감이 미약한 한승수 총리가 더욱 왜소해질 거란 걱정도 들린다. 박영준 차장 등 차관정치 당사자들에게 남겨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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