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더 세진 이세돌, 정교함을 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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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세돌(사진) 9단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지난 연말 한때 5연패를 당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것은 역시 ‘무리한 스케줄’ 탓이라는 게 증명됐다.

19~21일 벌어진 삼성화재배 세계오픈 결승에서 이세돌은 조금은 싱겁다 싶을 정도로 손 쉽게 2대0 승리를 엮어내 2년 연속 우승을 이뤘다. 대국 도중에 사방에서 이런 탄식이 들려왔다. “쿵제가 이렇게 힘을 못 쓰다니!” 종착점을 모르는 이세돌의 질주가 바둑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박영훈 9단, 최철한 9단, 원성진 9단, 박정상 9단, 윤준상 8단 등 랭킹 10위 이내의 강자들과 박정환 3단 등 강력한 신예들이 올해 첫 세계대회 결승을 보기 위해 대국이 열린 을지로 삼성화재 본사를 찾았다. 강동윤 9단 등 또 다른 강자들도 모니터를 통해 이 대국을 지켜봤다. 그들은 한결같이 더 커진 이세돌을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이세돌 9단의 바둑 스타일도 변하고 있다. 수읽기와 전투력이 강한 것은 똑같다. 그러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과거의 이세돌이 거칠고 사납고 돌발적이며 치명적이었다면 이번 삼성화재배에서 나타난 이세돌의 이미지는 정교하고 안정적이며 때로 묵직하기까지 했다.

이세돌은 여전히 담대하고 승부호흡에서 강렬함이 드러나곤 했으나 과거처럼 위험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특유의 도박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판 전체를 이세돌이 장악했다는 느낌, 날카롭고 뼈저린 창 끝이 판을 그물망처럼 봉쇄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짙어졌다.

수많은 젊은 강자들은 그런 이세돌에게서 어떤 항거할 수 없는 힘을 보는 것 같았다. TV나 인터넷의 모든 해설자들도 실제 내용보다도 과도하게 ‘이세돌 편’을 드는 듯 보였다. 곰곰 생각하니 이건 과거 이창호 전성시대의 풍경이었다. 이창호가 조금 우세해지거나 비슷해지기만 해도 해설판에선 ‘이창호 승리’가 일찌감치 결정되었던 것처럼 지금 이세돌 바둑이 그런 현상을 유발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세돌 9단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이긴 듯 비쳤다. 그러나 이세돌 9단 본인이 전하는 실제 바둑 내용은 달랐다. 이세돌 9단은 우승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아직 일인자가 아니다. 이창호 9단에게 우승 횟수나 상대 전적에서 모두 밀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이 일인자라는 사실은 검토실의 풍경과 해설자들의 어조만으로도 이미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이세돌 9단이 직접 해설한 결승 2국 하이라이트

○·이세돌 9단  ●·쿵 제 7단

 <실전> 쿵제 7단의 착오


죽어가는 좌변을 놔둔 채 60으로 막아간 수가 칼을 숨긴 무서운 한 수였다. 쿵제는 61로 백을 잡았으나 이세돌의 66이 묘수여서 결과는 패. 74까지의 바꿔치기는 흑의 손해였고(73=66) 백이 확연히 앞서는 국면이 됐다(이세돌 9단은 초반 포석이 나빠 고전이었 는데 패 덕분에 승기를 잡았다고 했다).

 <참고도1> 검토진의 분석


백△로 막았을 때 흑1로 곱게 빠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검토진의 일치된 분석이었다. 흑A가 사활에 선수인 만큼 흑 대마도 안전해서 충분한 형세라고 했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백6으로 곧장 막아 흑이 어렵다고 했다. 백B가 선수여서 흑A를 선수하고 C로 넘을 틈이 없다는 것.

 <참고도2> 이세돌 9단의 판단


이 9단은 실전 69 를 실착으로 지목했다. 대신 흑1, 3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건 백4를 당해 귀가 죽는다 ). 이세돌 9단은 그러나 이게 두려웠다고 했다. 대마는 아직 A로 두 번 기어 나온 뒤 B로 붙여 사는 맛이 있기 때문에 5로 밀면 흑이 충분한 형세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흑은 멍청히 걸려들어 주는 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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