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재개발 참사] 재개발 관련자들 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과 세입자 등 50여 명이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5층짜리 남일당 빌딩을 기습적으로 점거한 때는 19일 오전 5시30분. 이 소식을 들은 조합은 용역업체 직원을 현장에 급파했다. 20대의 건장한 직원 수십 명은 농성자들 바로 아래층에 자리를 잡았다. 남일당 빌딩은 이때부터 경찰이 나서기 전까지 전철연 사람들과 용역업체 직원들의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표면적으로는 재개발 보상금을 두고 벌인 재개발 조합과 지역 주민들의 갈등이었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현지 주민은 사망자 두 명을 포함해 10여 명에 불과했다. 이해 당사자인 조합과 철거민보다는 외부인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해 당사자가 아닌 외부인까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상에 대한 갈등이 주민 간의 불화를 불렀고 결국 외부인의 개입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용산 4구역은 도심 재개발 사업이다. 건물·토지 소유주들이 스스로 조합을 구성해 시공사를 선정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의 이해 당사자는 크게 조합원과 세입자로 나눠진다. 조합은 주택 세입자에겐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4개월분과 이사 비용을 준다. 국토해양부 고시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상가 세입자다. 조합은 이들에게 휴업보상금 3개월분을 준다. 하지만 상가 세입자들은 이 돈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주장한다. 상가의 경우 임대료와 별도로 권리금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 세입자는 “영업보상은 3년 소득의 한 달 평균치를 기준으로 3개월분인데 권리금이나 다른 부대 비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설보상도 옮길 수 없고 벽에 부착된 인테리어들만 고려해 에어컨이나 탁자 등의 시설은 고스란히 매몰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용산 4구역은 890명의 세입자 중 3분의 1이 넘는 344명이 상가 세입자다. 용산구청 관계자도 “80% 이상이 보상 합의를 하고 나갔다. 남아 있는 인원 중 다수가 상가 세입자들”이라고 말했다.

◆용역업체-전철연 대리전=세입자들은 조합이 보상 합의를 조속히 이끌어내기 위해 용역업체들을 동원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으로 전철연 등 외부 세력에 개입의 명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남일당 빌딩 뒤편에서 지물포를 운영하는 한명진(59)씨는 “관리처분인가가 떨어진 지난해 5월부터 용역업체들이 설치기 시작했다”며 “20대의 덩치 큰 용역업체 직원들이 가게를 찾아와 소리를 지르고 나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도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지역 세입자들의 대부분이 전철연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용역업체들에 대한 분노가 전철연 가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철연에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30여 명 이상의 전철연 소속 회원은 지난해 12월까지 용산 5구역에서 농성을 하다 사건이 일어난 4구역으로 넘어왔다.

이춘호 재건축 조합장은 “마지막까지 남은 세입자들이 전철연과 만나면서 갑자기 과격하게 변했다”며 “철거가 시작된 지난해 9월만 해도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번과 같은 폭력적인 시위는 처음이라는 것이다.

일부 주민도 용역업체 못지않은 전철연의 과격 시위 방식에 대해선 문제를 지적했다. 남일당 빌딩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이모(34)씨는 “전철연 집회를 보면 인천·대구 등 다른 지역에서 오는 차량이 많다”며 “연대의식이 강해 집회에 불참하면 벌금도 물린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합과 세입자들 간의 갈등이 결국 외지 사람들까지 끌어들였고 이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장주영·이정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