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은퇴 … 주택 수요 내리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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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신월동에서 1억1000만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홍민기(37)씨는 당분간 집을 살 생각이 없다. 최근 집값이 떨어졌다지만 그가 감당하기엔 여전히 버겁다. 저출산이 이어져 인구가 줄면 자신이 은퇴할 때쯤엔 집값이 뚝 떨어질 거란 게 그의 생각이다.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향후 10년간 사회변화 요인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홍씨의 판단이 맞을 것 같다.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 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35~54세 인구는 앞으로 2년 뒤부터 점점 줄어들 전망이다. 자연히 주택 수요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달라지는 것은 집값뿐만이 아니다. 대학에 진학할 학생도 줄고, 군대 갈 사람도 줄어든다. 이명박 정부의 국가 발전 전략이 과거 정부와 완전히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통계청은 최근 이 보고서를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에 보고했다.


◆늙어가는 대한민국=통계청은 한국 인구가 2018년 4934만 명을 정점으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고령화다.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지금부터 7년 뒤인 2016년부터 감소할 전망이다.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30~40대 인구는 이미 2006년부터 줄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면 고령화 사회, 20%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한다. 독일은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까지 77년이 걸렸다. 프랑스는 154년, 미국은 9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은 26년 만에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가 낳는 문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의 경우 생산 가능 인구 7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2036년엔 단 두 명이 짐을 나눠져야 한다. 대학에 진학할 때가 된 인구는 이미 2002년부터 입학정원 밑으로 떨어졌다. 통계청 김영노 분석통계팀장은 “현 대학 정원이 유지된다면 2015년엔 대학들이 심각한 구조조정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입대 자원도 3년 뒤부터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국가 개조 나서야=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역·고용·주택·보육 등 모든 정책을 새 틀에서 고민해야 한다. 통계청은 보고서에서 “이제는 매년 주택을 50만 채씩 짓는 식의 주택정책은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도심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1~2인 가구를 위한 소형 주택 위주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투기를 전제로 만든 세제도 다시 뜯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고령 인력 활용 방안도 시급하다.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54.8%)은 아직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평균(61.1%)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통해 고령자 고용도 더 늘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인구 감소로 위축될 내수를 어떻게 벌충할 것이냐다. 우리나라의 내수 의존도는 49.3%로 미국(72%)·일본(55.8%)에 비해 턱없이 낮다.


김대기 통계청장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가뜩이나 약한 내수가 더 쪼그라들 것”이라며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외국에 물건을 많이 파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비중도 낮춰야 한다. 음식점 1개당 인구 수가 우리는 85명인데 반해 미국은 606명이다. 인구 감소로 수요가 점점 줄어들 게 뻔한 상황에서 이들을 임금 받고 일하는 근로자가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국가의 사활을 걸고 법률·의료·교육·관광 같은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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