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때 못맞추는 경제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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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정책 중에서도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돈을 푸는 것도 물가가 마구 뛸 때는 독약이 되지만 장기 불황기에는 보약이 될 수 있다.

원인은 그대로 두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만 집착하는 것도 경제정책이 피해야할 금기사항 중 하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최근 정부가 빚 많은 기업에 세금까지 더 물리겠다고 한 정책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시기가 안좋다.그렇지 않아도 장사가 안돼 죽을 맛인 기업들에 세금까지 더 물리겠다는 것은 벼랑에 선 기업의 어려움을 외면한 발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재벌이 망하는데 정부가 가만 있겠느냐”는 배짱으로 빚을 늘린 잘못된 기업의 경영관행은 고쳐야 한다.아랫돌 빼서 윗돌 괴듯 빚에만 의존해서 회사를 꾸려가는 기업까지 세금 깎아주고 은행돈 대주면서 돌봐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확장하지 않아도 장사가 안돼 빚이 늘 수밖에 없는 불황기에 빚 많으면 세금까지 더 물리겠다는 정책은 타이밍이 안좋다.

더욱이 정부는 빚 많은 기업을 죄인 다루듯 다그치면서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느냐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재벌들이 빚을 얻어서라도 계열사를 늘리려 했던 이유중 하나는 정부의 각종 인.허가등 진입규제다.

정부인가가 필요한 업종일수록 일단 면허만 받아놓으면 정부가 다른 기업의 진입을 막아주고 각종 금융.세제 지원을 해줬다.80년대 우후죽순격으로 생긴 신설 생명보험사가 대표적인 예다.정부가 생보사 신설을 막다가 한번 풀어주니까 사업성은 따져볼 겨를 없이'정부 마음 바뀌기 전에 들어가고 보자'는 식으로 앞다퉈 생보사를 설립했다.그 결과가 현재 신설 생보사의 집단 부실화다.

은행도 문제다.사업성이나 신용상태는 뒷전이고 담보나 계열사의 지급보증을 받아오면 돈을 꿔줬다.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빚에 의존한 경영 관행을 고치자면 그렇게 만든 원인에 대한 수술도 함께 이뤄져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

더구나 현재의 재벌 경영행태는 어제 오늘 생긴 일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굳어져온 구조적인 문제다.단칼에 도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여론에 따라 냉탕.온탕식으로 정책을 바꿀게 아니라 중장기적인 정부 정책방향을 미리 밝혀두고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야 기업도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정책의 타이밍을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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