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원점 맴돈 13년 교육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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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어쩌면 이 정부에서는 마지막 보고회가 될성싶은 교육개혁위원회의 대통령에 대한 제4차 교육개혁안 보고회가 월요일에 있었다.때가 때인지라 비록 지난 세차례의 보고때처럼 화려한 조명아래 온 국민의 뜨거운 시선을 끌어모으지는 못했지만 내용만큼은 그 어느때 못지 않게 풍성하고 알찼다.

이를테면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공교육을 강화하겠다,2000년에는 현재의 초.중등학교 학습량을 70% 수준으로 줄이겠다,학급당 인원을 35명으로 줄이겠다,몇개의 연구 중심대학을 집중 육성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겠다는등 모두가 얼핏 듣기에는 매우 고무적이며 참신하고 또 꽤나 진보적인 개혁안들이다.어서 그때가 와 제발이지 내 아이들이 그러한 교육여건에서 공부하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과 기대를 느끼게 하는 멋진 개혁안으로 보이기도 한다.

선거를 한두달 앞두고 이런 내용이 발표됐다고 한다면 표를 의식해 그런 내용을 발표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달콤한 내용들이 들어있기도 하다.물론 그렇다고 이번 발표된 교육개혁안들이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만큼 완벽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시행과정에서 좀 더 다듬어져야 하고 보완돼야 할 내용들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교육개혁안은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된 것인가.그전에는 전혀 없었던 일인가.거슬러 올라가면 교육개혁안을 대통령이 처음에는 선거공약으로,그리고 나중에는 국가 통치구호로,국정지표로 삼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全斗煥)대통령 때부터의 일이다.85년 全대통령은 교육개혁심의회를,88년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교육정책자문회의를,그리고 94년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교육개혁위원회를 모두 똑같이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했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이었다.그렇게 교육개혁을 추진한지 어언 13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리고 그 13년동안 우리는 대통령에 대한 교육개혁안 보고회를 수없이 지켜보았고,또 그때마다 무지개빛 청사진에 희망과 용기를 함께 느꼈다.

그러나 지난 13년동안 우리는 얼마나 교육개혁을 이뤄왔는가.13년 전의

우리나라 교육이 놓여 있었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발전되고

나아졌을까.하기야 없었던 컴퓨터가 교실안에 들어오고,천길인지 만길인지

잘 들여다 보이지도 않았던 화장실이 수세식으로,좌변기로 바뀌었고,또

열살밖에 안된 어린아이들이 영어단어를 자연스럽게 내뱉는 것을 보면 크게

발전을 이룩했는가 싶다.

그러나 어찌 보면 과외는 13년전 그 옛날보다 더 심해진듯 보인다.그때도

정부는 과외열풍을 어떻게 하면 가라앉히고 사교육비를 줄이는가

고민했는데,13년후 지금에 와서도 정부는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인간교육을 그렇게 오랫동안 외쳐왔지만 교실안의 인간성은 13년

전보다 더 많이 죽어가고 있는건 아닌가. 왜 이렇게 됐을까.이제 대선을

앞두고 후보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토론회가 한창이다.아직은 안

나타났지만,또 어떤 후보들은 중단없는(?)교육개혁을 선거공약으로 내걸

것이고,그리고 당선된 후 그것을 국정지표로 삼겠지 싶다.그리고 무슨 명칭의

위원회를 만들지는 모르지만,그런 것 하나 새로 만들어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지 싶다.그리곤 만든지 1년쯤 후엔 지난 월요일 같은 보고회를 아주

멋지게 하겠지 싶다.물론 별로 새롭지 않은 교육개혁을 포장만 바꾸어 새

것인양 들고 나와 말이다.그리고는 교육개혁을 추진해 왔다는 역사의 연수만

늘려 놓을지 싶다.

언제나처럼 장미빛 구호뿐인 교육개혁,본질은 그냥 놓아둔채 껍데기만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대는 전시효과적 교육개혁,정치에 예속돼 이루어지는

교육개혁,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매번 원점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되돌아갔던

교육개혁,그러한 교육개혁이 이번 대선이 지나고서도 계속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은 그저 쓸데없는 군걱정으로 끝나길 바란다.

이성호 연세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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