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수표제도 왜 고치려하나 - 당좌거래 활성화 통한 부도도미노 방지목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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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어음제도를 손댄다면 가위 혁명적 조치로 기록될 만하다.그만큼 어음은 우리 사회에서 뿌리 깊은 결제수단으로 이용돼 왔기 때문이다.95년에도 재정경제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업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음제도 개선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바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어음의 문제점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하나는 어음비중이 너무 커 통제가 안된다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어음이 배서를 통해 계속 유통됨으로써 부도나면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어음을 줄이려면 대체결제수단이 필요한데,정부는 당좌수표를 활성화하겠다는 복안이다.당좌수표는 결제일이 짧은 데다 배서가 안돼 부도나도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는 장점이 있다.또 은행이 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미리 당좌대월한도를 정해 주기 때문에 어음처럼 무제한으로 발행되는 폐해도 막을 수 있다.그 대신 정부는 당좌수표를 발행했다가 부도낼 경우 형사처벌받는 현행법규를 개정해 당좌수표 사용을 적극 권장하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수표를 부도냈다고 형사처벌받는 제도는 선진국에는 없다.지난해 행정쇄신위원회에서도 수표거래 활성화를 위해 부도시 형사처벌조항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금융계에서는 어음제도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우선 돈을 줘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자금관리가 급박해지게 된다.현금이나 수표로 결제수단을 바꾸면 자금운용기간이 크게 짧아지기 때문. 이를 피하기 위해 수표에 지급기일을 둔다거나 일정기간후 현금결제해 주는 식으로 운영하면 지금의 어음제도와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게 된다.금융기관도 별로 득이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어음할인과 관련된 상품이 위축되기 때문이다.특히 신용금고.종금사.파이낸스.할부금융등 어음을 매개로 한 금융기관은 업무영역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한보사태.부도방지협약등으로 가뜩이나 자금시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제도에 손댈 경우 위험이 더 크다는 지적이 많다. 고현곤.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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