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큰손들 “1분기에 현금 늘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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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불안할 때는 역시 현금이다-. 한국의 부자들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그룹인 ING가 아시아 13개국의 30세 이상 고액 자산가 13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4분기 투자 현황과 올 1분기 투자계획을 설문 조사해 1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 10만 달러(약 1억3620만원) 이상을 굴리고 있는 아시아의 부자 중에서 지난해 4분기에 비해 올 1분기 현금과 예금 비중을 높이겠다는 사람의 비중은 한국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 지난해 4분기 국내 고액 자산가의 전체 운용자산에서 현금·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였다. 그러나 올 1분기 투자계획을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들이 내놓은 현금·예금 비중은 59%로 껑충 뛰었다. 중국과 인도·대만의 고액 자산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 <표 참조>


조사를 주관한 ING는 고액 자산가들이 현금 비중을 지나치게 높이는 것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앨런 하든 ING자산운용 아태지역본부 대표는 “요즘처럼 각국 정부가 돈을 많이 푸는 시기에는 현금성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선 금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각국 정부들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재정을 투입함에 따라 향후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4분기 국내 고액 자산가의 포트폴리오에서 금은 주요 투자 대상에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그러나 올 1분기 투자계획에선 금을 고른 응답률이 26%로 급등했다. 이는 대만 고액 자산가의 포트폴리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또 중국과 인도의 고액 자산가도 지난해 4분기에 비해 올 1분기 금 투자를 늘릴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고액 자산가들의 해외 펀드에 대한 애정은 싸늘하게 식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 연말로 세제 혜택이 종료되는 데다 지난해 해외 펀드에서 큰 손실을 입은 데 따른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시아의 고액 자산가들은 올해 증시를 지난해보다는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 1분기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자산가는 3분기 조사(65%) 때보다 10%포인트 줄었다. 반면 주택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더 높아졌다. 3분기에 실시한 조사에선 주택시장이 더 침체될 것이란 답변이 46%였으나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68%로 높아졌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뺀 나머지 11개국의 고액 자산가들은 주택시장 침체를 투자 기회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택 구입에 나설 계획이란 답변이 증가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대출을 통한 주택 구입 의사가 3분기의 44.1%에서 절반 수준(22%)으로 줄었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8일 실시됐으며 국가별로 100명의 고액 자산가가 설문에 참여했다. ING는 분기마다 같은 조사를 한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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