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유래>동대문구 전농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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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흥인문 밖에서 무엇을 보았는가(興仁門外何所見)/적전이랑을 농부가 간다네(畝農人秉靑)' 조선 후기 실학자중 한 사람인 아정 이덕무(李德懋)가'성시전도(城市全圖)'란 시에서 읊은대로 동대문구전농동의 이름은 조선시대 임금의 친경지인 적전(田)이 있었던데서 유래됐다.

'전농(典農)'이라 불리기도 한 적전제도는 조선 태조때부터 있어온 것으로 개경부근의 서적전과 이곳 동적전등 두곳이 있었는데 멀리 신라때부터 이어져온 선농단(先農壇)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선농단이란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장키 위해 농신(農神)을 모신 단을 쌓고 임금이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조선때의 것은 현재 용두동138의63 4백70여평 크기의 터전에 남아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크기는 바깥단이 사방 8,안단이 4 규모.제사는 경칩후 첫 돼지날에 임금이 백관들을 거느린 가운데 엄숙히 치러졌다.제사를 마치면 대소신료들과 함께 몸소 이곳에 있던 동적전으로 가 쟁기로 밭을 갈았다.이곳 적전의 넓이는 백무(百畝:2천평),즉 여드레갈이(八日耕)로 밭갈이를 구경하는 관경대(觀耕臺)와 함께 필분각(苾芬閣)이란 관청건물이 있어 종묘대제와 별제등에 쓸 자성(자盛:기장과 피)을 비롯,천신(薦新:햇곡을 먼저 신이나 조상에 바침)할 육곡(六穀)을 비치했다.

프로야구로 치면 대통령의 시구쯤에 비유될 이 행사에는 성종때부터 이순(耳順)이 넘고 다복한 농민들을 참석하게 해 위로하는'기민노주(耆民勞酒)의 예(禮)'와 함께 대사령(大赦令)이 베풀어지곤 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실감케 하는 이 대목에서 소를 잡아 살코기는 안주로 삼고 뼈는 곰국을 끓여 나눠먹게 하니 이것이 바로 요즘 설렁탕의 원조로 어원이 된'선농탕'이다.

'눈빛같이 뽀얗다고 해 설농탕(雪濃湯)'이니'설설 끓는다 해서 그냥 설렁탕'이니 하는 주장도 있지만 죄다 나름의 이설일 따름이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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