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국대통령 성희롱 사건으로 재임중 법정에 설지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성희롱 사건으로 미 헌정사상 처음으로 재임중 법정에 설지 모르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미 연방대법원이 27일 “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성추문 사건의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딱 잘라' 판결했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을 곤궁에 처하게 만든 성희롱 사건이 표면화된 것은 지난 94년부터. 전 아칸소주정부 직원이었던 폴라 존스가 91년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 대통령에게 성희롱당했다며 손해배상을 제기하면서 대통령 재임중 민사처벌 가능 여부를 두고 법리논쟁이 가열됐다.

클린턴 대통령측은 사건 자체를 두고 결백 주장을 펴는 한편“현직 대통령에 대한 민사재판 허용은 유사한 법정시비의 연속으로 대통령직 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며 임기중 재판불가를 주장했고 존스측은 법의 평등을 강조하며 맞서왔다. 1심인 아칸소 지방법원은 94년 현직 대통령이 면책특권이 있다고 판시했으나 지난 1월 고등법원은 이를 번복,결국 대법원에서 이날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의 결정이 나자 원고측 조지프 카마라타 변호인은 즉각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판절차가 즉각 개시되기를 원한다”며 전의(戰意)를 보였다.

반면 클린턴측 변호인인 로버트 베네트는“원고측과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법정대결이 불가피할 것같다.

전문가들은 백악관측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재판일정을 지연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소동을 거치는 과정에서 클린턴은 경우에 따라 집권2기 내내 성추문 사건의 뒤치다꺼리에 급급할지 모르는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미 의회 일각에서는 특히 지난해 대선자금 불법조성 의혹과 관련,클린턴 대통령 탄핵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같은 판결이 나왔다는 점을 들어 집권2기를 맞은 클린턴의 정치적 장래에 불길한 전조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미 대법원에 따르면 2백여년의 미 헌정 사상 민사재판에 연루된 대통령은 단 3명 뿐이다.

즉 지금까지 민사재판이 청구된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시어도어 루스벨트.존 F 케네디등 3명이었으나 이중 트루먼과 루스벨트에 대한 소송은 취임전 기각됐으며,자동차 사고에 연루된 케네디의 소송은 피해자와의 합의로 해결됐다.

한편 이번 판결에 대해 미국사회는 대체로 “법이 살아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이재학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