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북한 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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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평양(平壤) 한복판 김일성(金日成)광장에 있는 조선미술박물관의 2층 마지막 전시실에는 해방후 남한에서 활동하다 작고한,혹은 활동하고 있는 화가들의 여러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김은호(金殷鎬).이상범(李象範).장우성(張遇聖).김기창(金基昶)등의 작품들이다.비록 해방전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화풍(畵風)을 감안할 때 북한에서 높이 평가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북한 화단(畵壇)은 이들의 작품을 자기네들의 예술적 이데올로기에 걸맞은'진보적인 미술'로 간주한다.'조선미술사'의 첫권은'진보적'인 이유로 그들의 작품이“민족적 생활감정과 정서를 중요시하고 조선화의 고유한 화풍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꼽는다.다른 설명도 곁들여져 있지만 그 대목만으로는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문제는 북한의 미술이 기법측면 보다는 소재의 측면을 더 중시해 왔다는데 있다.김일성에서 김정일(金正日)에 이르는 시대를 통틀어 북한 미술이'찬란히 개화발전하여 대전성기를 이룰 수 있었던'배경을 金 부자(父子)의'주체적 문예사상을 구현한 당의 독창적 문예이론과 방침이 관철된 결과'로 보는데서 잘 드러난다.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지 못하는 예술은 쓸모가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정치적 도구'라는 점을 제쳐놓는다면 북한미술도 장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우선 삶의 긍정적.낙관적 묘사로 채워져 있다는 점,원근법적 묘사방식의 단일성과 매우 세련되고 섬세하다는 점,그리고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시각으로 대상과의 친화력을 높인다는 점 등을 꼽는다.물론 이같은 기법의 작품들이 북한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리가 없지만. 한데 몇해 전부터'외화벌이'로서 상품화할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 외국관광객이나 해외시장에 선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평판도 그리 나쁘지 않다니 최악에 이른 북한경제가 북한미술을 국제무대에서 새롭게 평가받게 하는 계기를 안겨주는 셈이다.한 단체가 금강산.묘향산 등 북한의 자연을 소재로 한 소품 4만여점을 반입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실향민들은 작품을 통해 고향의 풍물을 접할 수 있고 정치색이 배제된 북한미술의 수준도 엿볼 수 있으니 기대를 걸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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