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월드] 유럽 통합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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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스페인에서는 불법이민자들에게 합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지난해 8월 현재 스페인에 주민등록이 돼 있고, 고용기록이 있는 불법이민자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조치입니다. 올 초 이런 움직임이 알려졌을 때 독일과 네덜란드 등 일부 EU회원국들이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불법이민자들이 영주권을 받으면 EU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업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네 나라 일자리를 빼앗길까봐 반발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민정책은 EU 차원에서 간섭할 수 없는 회원국 주권사항입니다. 이에 회원국들은 내무장관회의를 통해 앞으로 다른 회원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요 이민정책을 결정할 때 협의를 거치도록 결의했습니다.

지금 유럽사람들은 통합이라는 이상을 좇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시장 개방 문제는 최대 골칫거리입니다. 이미 실업률이 높은 상태에서 다른 나라 노동력까지 쏟아져 들어올 태세니 말입니다. 이에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 회원국 노동력 유입을 7년까지 유보할 수 있게 한 조항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입장입니다. 독일의 경우는 미장공과 같은 힘든 업종만 개방했습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처럼 문을 연 나라도 있지만 아직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노동시장 개방 문제는 기존 회원국과 지난해 가입한 신규 회원국 모두에 불만 요인입니다. 동유럽 국가들은 '취업도 못하게 하면서 이게 무슨 통합이냐'고 볼멘소리고, 서유럽 국가들은 일자리를 빼앗길까 전전긍긍입니다.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도입하려고 했던 역내 서비스 시장 개방도 같은 맥락에서 벽에 부닥쳤습니다. 우선 프랑스가 도입을 무산시켰습니다.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 가난한 회원국 서비스회사들의 '덤핑'을 막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죠.

이런 문제들은 통합을 위해 겪어야 할 당연한 고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공식 언어가 20개로 늘어나 통.번역에만 연간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가 든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행위원회의 한 고위관리는 "유럽이 분열돼 서로 전쟁을 하게 될 때 들어갈 비용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경제적 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말입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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