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부실공사 사례 모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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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속전철 부실공사 문제로 국민들이 답답하던 터에 또 사건이 터졌다. 돈암동의 한진아파트 축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려 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거리를 지나다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비탈에 우뚝 솟은 고층아파트와 금이 간 축대를 보면 섬뜩하다.이같은 재해는 국가경제의 누수다.

얼마전 시설안전공단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수도권 주민중 37%가 자기들이 이용하는 건물에 불안을 느낀다고 대답했다.부실공사에 대한'불안신드롬'이 만연한 것이다.

베란다에 서 있다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한강다리를 건너도 고층엘리베이터를 타도 불안하다.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불쑥 정전이 되지않을까 겁나고,이상한 냄새가 나면 가스유출이 아닌가 섬뜩하기도 하다.

그동안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국민들은 시달려 왔다.멀리는 와우아파트에서부터 최근의 성수대교 붕괴,마포 가스폭발사고등등.게다가 국책사업이라는 대형공사마다 부실이라니 도대체 부실하지 않고는 공사를 할 수 없는 것일까.유럽에서는 로마시대에 만든 교량 80여개가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生命을 볼모로 한 게임 그만 인간의 작품은 완전할 수 없다.확률적으로 볼 때 어느 건물이건 넘어질 수 있고 재해를 당할 수 있다.그래서 안전한 설계란 예정 하중의 몇배로 하는 것이 이상적인지 판단하기 힘들다.또 몇십년마다 있는 홍수나 지진에 대비하는 것은 낭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다.사람을 볼모로 한 확률게임은 곤란하다.호프만식이니 하인리히식이니 하는 방식의 계산으로 인명이 보상되는 것이 아니다.나사못 하나를 아끼려는 속좁은 마음이 엄청난 불행을 가져올 수 있고,반대로 조그만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사업가 입장에서 보면 몇푼의 보상비나 보험료가 더 경제적일 수도 있다.인명경시나 재해불감 풍조의 배후에는 이같은 경제적 타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미필적 고의라고 해야 할까. 불필요한 기우라는 견해도 있었지만 서울시의 당산철교 철거 결단에 나는 찬성한다.

건축물이 무너지는 것은 공학적 오류일 수도 있고 설계상의 미스일 수도 있고 시공상의 부실일 수도 있다.미국의 토머스 매케익은 '실패한 건축물들'이란 책에서 여러 사례를 분석한 결과“건물이 무너지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무지.부주의.탐욕때문이다”고 결론지은바 있다.

過誤 극복하는 용기가 중요 실패는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인이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실패한 사례는 소중한 경험이다.

지난 81년 7월 미국 캔자스시티 하얏트 리전시 호텔의 고가통로가 무너져 1백14명이 죽고 2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연방표준국은 이 사건의 구조적 실패를 조사하고 그 자료를 널리 배포하도록 조처했다.그후 미국 메릴랜드대학에서는 과학재단의 도움으로 '건축공학정보센터'를 만들어 건축물들의 실패 사례를 상세한 자료분석과 함께 모으고 있다.

실패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변명할 일도 아니다.문제는 과오를 극복하는 용기다.실패한 사례는 많다.가령 영국에서 처음 철교를 만들 당시에는 수많은 다리가 기차와 함께 무너져 내렸다.이같은 실패 위에서 오늘날 같은 거대장교가 있는 것이다.우리도 실패의 사례를 모으자.거울이 되게 하자.이것이 실패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이고 우리가'부실신드롬'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이건영<교통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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