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눈 감고 전면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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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리저 6단 ●·저우루이양 5단

 제5보(52~67)=52로 씌우며 리저 6단은 스스로를 타이른다. 어려울 때일수록 질서 있게 생각해야 한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고 차분히 전국의 흐름을 한눈에 포착해야 한다. 나의 한 수가 전국의 흐름에 반응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그러나 잘 안 된다. 흑▲ 석 점을 바라보는 리저의 눈길은 금방 격정에 휩싸이고 만다. 우상이 죽었다. 그 시체들이 자꾸만 시야에 들어와 피의 보복을 꿈꾸게 만든다.

저우루이양 5단도 리저의 살기를 느낀다. 그 바람에 59, 61이란 비상수단이 등장했다. 이런 수는 대표적인 이적수로 꼽힌다. 그러나 ‘참고도1’ 흑1로 잇는 것은 너무 정직해 백2의 요소를 당해 응수가 두절된다. 그래서 체면을 잠시 접고 속도를 내 도망치기로 했다. 63, 이곳이야말로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쟁취해야 할 요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63은 A의 절단을 노린다. 그게 싫어 백이 ‘참고도2’처럼 넘어간다면 흑은 2,4로 연결해 최상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백이 끝나는 그림이다.

말도 아닌 소리 말라며 리저는 64로 갈라버렸다. 65엔 66으로 재차 압박해 전면전으로 나간다. 눈 감고 밀어붙이는 백의 기세 탓인가. 판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A조차도 사소하게 보일 만큼 좌하 일대에 백의 거대한 파워가 모여들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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