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관계해빙오려나>下. 한국.미국 제동등 역풍에 찻잔속 태풍 그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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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이 내민'일본인처(妻) 귀국허용'카드가 북한의 의도대로 약효를 발휘한다면 북.일관계가 다소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우선▶일본의 대북한 식량지원▶일 연립여당 대표단의 방북▶북.일 수교교섭 재개등이 예상 가능한 항목이다.문제는 이 과정에서 역풍(逆風)을 몰고올 변수들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식량지원 문제는 일부 경계론에도 불구하고 성사 가능성이 가장 높다.미국이 일본의 식량제공을 일찍부터 권유해 왔고 한국도 반대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내 일본인처들의 모국방문에는 여러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우선 실무적 어려움이 만만치않다.북한거주 일본인처 1천8백여명(상당수 사망예상)중 몇명을 일본에 보내 얼마동안 머무르게 할 것인지,또 일본 잔류를 고집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등 골치아픈 사안이 한두가지가 아니다.일본인처의 모국방문이 성사되더라도 소수인원으로 제한된 상징적인 방문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견해가 우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민당이 자민당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연립여당 대표단의 방북은 북한의 일본인처 귀국허용 태도표명으로 성사 가능성이 약간 높아진 상태다.지난달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金正日)과 만난 것으로 알려진 허종만(許宗萬)조총련책임부의장이 일본정계 요로에“이번에 가면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여당대표단의 방북을 적극 설득하고 있는 것도 성사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이같은 단계들이 무난히 진행된다면 92년 중단된 북.일간 수교교섭도 재개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국내외 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북.일간 해빙무드가 인도적 문제에서 본격 정치협상으로 넘어갈 조짐을 띠면 한국이 즉각“4자회담을 잊었느냐”고 항의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가을 매듭지어질 미.일간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작업이 기본적으로'북한위기.위협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나친 해빙무드가 미.일 양국 모두에 달갑지 않다는 사정도 깔려 있다.

이와 함께 9월 자민당총재선거를 앞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입장에서 보면 북한지원이라는'영양가없는 정치메뉴'에 집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모처럼 던진 카드가 자칫 '찻잔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나도는 것도 이같은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도쿄=노재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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