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해마다 걸려오는 제자의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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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 해마다 5월14일 밤이 되면 11년 전에 졸업한 제자로부터 반가운 전화가 걸려온다.그 제자는 졸업이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밤11시쯤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선생님,저 흥복입니다.그간 건강하시며 별고 없으십니까? 당장 달려가 선생님을 만나뵙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다음에 부산에 내려가면 꼭 선생님댁에 들르겠습니다.계속해서 제자들과 함께 뒹굴고 호흡하는 교사상을 보여 주십시오”라며 안부를 묻곤 한다.

그러면 나는“흥복아,정말 고맙구나.직장생활에 피곤하고 바쁠텐데 잊지않고 계속 이 시간에 전화를 주니 감개무량하다.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는데 색시감은 구했는가.그때는 내가 꼭 참석하마”하고 대답한다.

83년 1학년이던 흥복군의 담임을 맡았는데 별로 잘 해준 것도 없고 유난히 관심을 가졌던 제자도 아니다.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든 학생으로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다.성격은 아주 어질고 착해 어렵고 힘든 일은 반에서 앞장서서 해냈으며 매사에 성실하고 나무랄데 없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재작년 6월말 대형사고가 났던 삼풍백화점에 근무했는데 당시 연락이 되지않아 난 제자를 잃은게 아닌가 무척 안절부절 못했다.부산의 본가에 전화해 무사함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어느정도 사고가 수습된뒤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무척 염려하셨죠.저도 연락드리고 싶었지만 사고후 눈코 뜰새없이 바빠 도저히 겨를이 없었습니다.이제 제 목소리 들었으니 안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해마다 스승의 날 전날밤에 걸려오는 흥복군의 전화 한통화는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다.

우정렬〈부산시중구보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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