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제2외국어교육 퇴보 막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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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 전 독일어.프랑스어.중국어.일본어등 6개 제2외국어학회와 제2외국어교사회는 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제2외국어 과목을 출제하고 모든 응시생이 시험을 보도록 해야한다는 골자의 건의서를 교육부장관에게 전달했다.99학년도 수능시험부터 제2외국어를 포함시키겠다던 교육부가 입장을 바꿔 2001년까지 유보할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교육부가 내세운 이유는'입시생의 학습부담'과'새로운 과외 유발'등이다.

이 나라 국민이면 수험생의 학업부담과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또 2년전 졸속으로 도입한 학교생활기록부,조기영어교육등으로 곤욕을 치른 교육부의 새삼스런 신중성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치명적인 질병도 아닌데'절대안정'을 요구하는 처방전과 다를바 없다.소극적 처방은 오히려 체력을 더 약화시키거나 보다 더 큰 병을 맞게 할 수 있다.

지난달 열린 한 토론회에서 정치.경제.학술등 각계 전문가들은 21세기'태평양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일본어.중국어.러시아어의 중요성,1백80여개국과 수교,80여개국에 이르는 나라와 교역,영어권에만 치우치는 학문적 불균형등을 지적하며 제2외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 바람에 거의 내팽개쳐지다시피한 고교의 제2외국어 교육을 더이상 방치한다면 당장'국제 경쟁력 있는 인력 배양의 공백'이라는 손실이 따른다.또 장기적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언어교육의 본질을 고려하면 제2외국어 학습 풍토의 황폐화는 말할 것도 없고 장기간 회복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만약 교육부가 제2외국어를 수능시험에 포함하지 않고도 고교에서 제2외국어 교육의 정상화를 유도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은 없다.

그러나 제2외국어에 대한 파행수업을 못하도록 고등학교를 선도하고 학생부의 활용을 통해 대입때 계열별로 외국어 교과성적에 가중치를 부여하겠다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고교에서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대학측은 제2외국어에 대한 학업성취도를 전형자료로 중시하기 어렵다.또 학부제 도입으로 대학에서 제2외국어 분야는'찬밥'신세로 전락하고 있는데다 점차 제2외국어 전공자들의 교사 채용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교육부는 좀 더 치밀하고 구체적인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든가 아니면 당초 계획대로 99학년도부터 수능 과목에 포함시켜 제2외국어 교육이 퇴보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강양원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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