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산책] 중국 외교부장, 새해 되면 달려가는 곳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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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로 시작해 보면 어떨까.
중국 외교부장의 새해 첫 출장지는 어느 대륙일까.

베이징 체류 몇 년 쯤 되면 눈 감고 맞출 수 있는 문제다.
정답은 '아프리카'.

아니나 다를까,
올해 양제츠 외교부장의 새해 첫 순방지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시작된다.

1월 13일 우간다 방문을 시작으로
르완다와 말라위, 남아공 등 아프리카 4개국을 방문한 뒤
유럽을 거쳐 21일께 중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비단 올해 뿐만이 아니다.
벌써 십여 년 넘게 중국 외교부장의 새해 첫 방문지는 아프리카다.

왜 그럴까.

영문 잘 모르는 양반들 입에선
'아, 중국이 또 아프리카에 자원외교 하러 가나 보다'라는 대답이 나올 법 하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정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양제츠 부장은 최근 한 중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전통에 따라서"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좋은 전통은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정답은 전통에 따라서다.
그럼, 언제부터 생긴 전통일까. 사연은 첸치천 외교부장 시대로 올라간다.

올해 20주년으로 중국당국을 긴장시키는
6.4 천안문 사태가 터진 1989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의 중국 고립 정책이 펼쳐졌고,
중국으로서는 서방 국가의 제재를 분쇄하는 게 급선무였다.

당시 외교부장 첸치천 선생의 중요 임무 중 하나가
어떻게 해서든 밖으로 나가 서방의 고립 정책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그 때 구원의 손길이 어디서 왔을까. 바로 아프리카다.
89년 그 해 첸치천 외교부장은 두 차례나 아프리카 국가 순방에 성공한다.

90년 하반기에도 이집트 등 3개국을 방문한데 이어
91년 새해 첫 날이 지나자 이디오피아,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4개국을 방문했다.

이듬해인 92년 1월 첸치천은 세네갈 등 아프리카 6개국을 방문했는데,
바로 이때부터 '관례가 생긴 것'이다.

매년 연초 중국 외교부장의 첫 방문국이 아프리카가 됐고,
첸치천의 뒤를 이어 지금까지도 중국 외교부장은 매년 새해 아프리카로 달려가는 것이다.

사실 중국 입장에선 아프리카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1971년 제26차 유엔 총회 때 중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한 76개 국가 중
3분의 1이 넘는 26표가 아프리카 국가에서 나왔다.

또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10년 연속
반중국 인권 결의안을 상정했는데
그 때마다 표 대결에서 중국에 승리를 안겨준 배경에 아프리카의 몰표가 있었다.

대만과의 외교전에서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단체 지지는 큰 힘이 됐다.

중국도 나름대로 경제적 당근 제공 등으로 아프리카 국가를 잘 관리해 왔다.
2006년엔 베이징에서 대규모 '중국-아프리카 포럼'을 열고,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부채 탕감, 원조 등 적지 않은 선물을 안겼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던데
중국과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적지 않게 서로를 도우며 지내왔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 국가들 입장에선
없는 물건도 아닌 지천으로 갖고 있는 '자원'을 중국이란 친구에게,
그것도 공짜가 아니고, 돈 내고 파는 데 뭐 그리 큰 어려움이 있겠는가.

중요한 점은 평소의 친구 관리다.
잘 맺어 놓은 우정으로 필요할 때 득을 보는 데 왜 이리들 배 아파 하는지.

'자원 싹쓸이'라고 욕을 해 보았자 깊은 산 속 메아리 같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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