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죄의식과 책임감은 아버지의 숙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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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호 06면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52)씨는 2002년부터 중국에 머물고 있다. 중국문명사를 정리하는 방대한 작업을 준비하는 중이다. 최근 신작 장편 『고향사진관』을 펴내 한국에 다니러 온 덕분에 그를 만날 수 있었다.

1996년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

-1996년 소설 『아버지』는 중장년층이 구조조정에 내몰린 시대상과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난 경제는 잘 모른다. 경제적 상황보다는 당시 지난 역사를 부정하는 움직임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였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낀 세대였다. 그런데 내가 존경하던 나이 든 선배들이 굉장히 허무해하고 서운해 하는 모습을 봤다. 뭔가 잘못돼 오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대의 질곡을 어떻게든 극복해온 아버지들 아닌가. 아버지의 역사가 부정당하는 이런 모습에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픽션이다. 아는 의사에게 생존율이 아주 낮은 병명을 물었고, 의학서적 등을 참조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의 실제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흔히 권위주의의 상징, 부정하고 타도할 대상처럼 여기지만 내가 지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다르다. 시발택시·버스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나한테 액셀 밟는 법을 가르쳐 주신 기억이 난다. 자식을 친구처럼 대하는 아버지였다. 나는 젊어서부터 나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은 사회 선배들과 어울리는 걸 즐겼다. 그분들이 술자리에서 그냥 주고받는 말이 내게는 보석 같았다. 내 아버지의 입을 통해 직접 배우지 못한 부분에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그런 선배들의 말을 지겹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 『아버지』의 주인공은 췌장암으로 시한부생명을 선고받는다. 그는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뒷일을 준비한다. 그런 주인공의 마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자존심인가.
“가족에게 잘해 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일 것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아버지들이 타고난 숙명 아닌가. 그러면서도 미안하다고 나긋하게 말하는 대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경제개발 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정서다. 그랬던 아버지가 갑자기 ‘나 병들었다’며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게, 속된말로 쪽팔리고 염치 없었던 거다.”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남북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탈북자를 소재로 소설 『길 없는 사람들』을 쓰면서 취재차 중국을 찾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땅덩어리에 놀랐고,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서 역사를 간직한 것에 매료됐다. 아버지들이 살아온 삶도 그 자체로 역사다. 그걸 매몰차게 난도질해 묻어버리려는 건 말이 안 된다. 살아온 역사를 부정하는 건 교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와 생각하면, 아버지를 부정하면서도 불안해하고, 그 불안감에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이 『아버지』에 대한 반응을 낳은 것 같다. 가장 다급할 때 가족이 위안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신작 『고향사진관』도 가족 이야기다.
“17년 동안 병든 아버지를 모셨던 내 친구의 실화다. 효심을 강조하는 얘기로 오해를 하는데, 그런 중에도 내 친구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평범한 삶의 행복,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가치,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할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긍정의 시각이 있다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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