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기다리기만 해선 안 돼 … 최소한의 대화 채널은 뚫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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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재 회사인 태림산업은 더 답답하다. 지난해 10월 북한과 합영회사를 세워 개성공단 외곽 지역에서 골재 채취를 시작해 월 10억여원의 짭짤한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호시절은 두 달 만에 끝이 났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개성 상주인원 축소 조치를 취하는 바람에 현장의 남측 직원들은 전원 철수해야 했다. 정양근 태림 대표는 “북측과 연락이 끊긴 데다 방북 초청장도 오지 않아 작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난달 매출이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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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개성 관광이 중단된 현대아산 역시 비상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일거리가 사라진 현대아산은 이달부터 임원과 부서장을 제외한 전 직원 200여 명이 15일간 두 차례씩 번갈아 가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그동안 월급은 70%로 줄어든다. 전년에 비해 33% 급성장했던 2007년 남북 간 교역 총액(17억9780만 달러)은 지난해 16억9800만 달러(11월 기준)로 하향 추세로 돌아섰다.

올해도 남북 관계는 풀릴 기미가 없다. 남과 북 모두 물러설 태세가 아니다. 김영철 국방위원회 정책실 국장(중장)은 지난해 12월 17일 개성공단을 찾아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때도 잘 살아 왔다”며 “공화국에 물과 땅, 공기가 있는데 그것만 가지고도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남쪽에선 우리가 공단을 포기 못할 것으로 예측하는데 그거야말로 오판”이라며 한 얘기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강원도 원산 청년발전소를 시찰한 뒤 제대군인 신혼부부 가정을 방문했다고 6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사진 73장을 공개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해법은 없나=꽉 막힌 남북 관계를 정부 책임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또 지난날의 잘못된 남북 관계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정부 원칙에 공감하는 여론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전면 차단 상황은 어떻게든 타개해야 한다는 제언이 많다. 특히 북한을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남북 경협은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면서도 그 유력한 수단인 경협을 무작정 차단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도 “개성공단은 인건비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활로를 터주는 것”이라며 “북한 버릇 고치기 식의 이념적 덧칠을 피하고 경제적 상생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최소한의 대화 채널은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역대 정부에서도 남북 관계에 부침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채널이 완전히 끊긴 적은 없었다”며 “북한 체제 변동 등 상황 관리를 위해서라도 접촉 창구를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은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 간에 무슨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며 “남·북·미 2인3각 경기로 진행되도록 미국과 채널을 단단히 구축하는 동시에 북한을 남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기다림도 전략이 될 수 있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채병건·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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