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력평가 답안지 서로 베껴도 교사는 모른 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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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달 치러진 중1~2 대상 전국 학력평가가 일부 학교에서 교사의 감독 소홀 탓에 엉터리로 치러진 것으로 보도됐다. KBS 취재진이 서울지역 27개 중학교 학생에게 무작위로 물었더니 70%가 “시험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감독도 철저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방송에선 교사가 감독 중에 신문을 보는가 하면, 답안지를 학생들이 서로 돌려가며 베껴 써도 모른 체했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엄정해야 할 학교 시험이 이렇게 엉터리로 치러지다니 기가 막힌다. 이럴 바엔 뭐 하러 시험을 치렀나. 아무리 교사들이 학력평가를 ‘피곤한 행정잡무’쯤으로 여겼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지난해부터 확대 시행되고 있는 전국 학력평가의 취지는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파악해 그에 걸맞은 학습계획을 수립하는 것이다. 학력이 부진한 학교를 찾아내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학교 간 학력격차를 줄이려는 목적도 있다. 교사가 감독을 소홀히 해 학력평가를 부실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기회를 박탈하는 반(反)교육적 행위와 다를 게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전교조 교사가 많은 일부 사립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렇게만 덮고 갈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학력평가의 취지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험감독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학부모 감독관을 적극 활용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 학력평가 때 학부모가 교실에 들어와 교사와 함께 시험감독을 했던 상당수 공립학교에선 시험장 분위기가 엄격했다고 한다. 학력평가 실시 시기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 기말고사와 교과 진도가 모두 끝난 학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선 학생들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감독 소홀 교사와 교장을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학생에게 체험학습을 허락하는 식으로 학력평가를 거부했던 교사들은 이미 중징계를 받았다. 감독 소홀로 학력평가 부실을 초래한 교사들도 학생의 학습권 침해라는 점에서 평가 거부 교사들과 다름없지 않은가. 교사들의 본분에 해당하는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