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세상에 주먹질 - 새영화 '비트' 인기만화 영화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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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젊은 도시건달들의 세계를 그린 액션영화 '비트'는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원작이 허영만의 인기만화이기는 하나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치고 성공한 예를 찾기 어려운데다 김성수 감독은 95년 데뷔작'런어웨이'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고 주인공 정우성은'허우대만 좋고 연기력은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비트'는 이같은 선입관을 일거에 비틀어버렸다.

만화의 이야기구조는 통상 비현실적이며 등장인물도 황당무계하다.그러나'비트'는 입시 지옥에 빠져있고 질식할 것같은 기성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늘의 한국 청소년들을 현실감있게 그렸다.또 다양한 시도의 역동적인 화면으로 패기만만한 연출을 보여준 김성수 감독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본 투 킬'에서 스타의 자질은 있으나 연기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정우성이 연기자로서 한단계 도약했다는 평도 받아냈다.

원작에서'누워서 뜨는 소'로 불리며 평소엔 소처럼 무겁게 지내다 싸움이 벌어지기만 하면 엄청난 파괴력으로 날아다닌다는 주인공 민.순간적으로 악에 받치는 그의 눈초리는'시계태엽 오렌지'에서 맬컴 맥도웰의 날카로움에 버금간다.

홍콩영화 못지 않은 신나는 액션신이'비트'의 겉모습이라면 그것에 내재된 정신세계는 세기말을 살아가는 한국 성장기 젊은이들의 암울한 미래다.

“내겐 꿈이 없었다.” 정우성의 낮게 깔린 목소리로 시작하고 끝나는 이 영화는'네멋대로 해라'라고 외치는'맨발의 청춘'정서에 맥이 닿아있다.

미래가 없는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화면은 환상적인 속도감에 저절로 취해버린다는 의미인'뿅카'(Honda CBR 600)의 속도감이다.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속 3백㎞의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젊은이들은 아득한 하나의 소실점,다가갈수록 멀어져가는 소실점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역을 연기한 조연 임창정과 유오성이 영화의 힘과 구성을 탄탄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도 특기할만하다.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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