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굶는 인민.과도한 군사지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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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핵동결.미사일규제 등을 중심으로 했던 미국의 대북한정책에 최근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고 있다.굶주리는 인민들을 먹여살리려면 과도한 군사비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다.미국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몇차례 공식적으로 언급돼 왔지만 지난 25일의 북한군 창건기념일에 있었던 대규모 군사퍼레이드에 대한 반응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북한군인들은 잘 먹고 잘 입은 것으로 보이는데,그런데 쓰이는 돈을 굶주리는 국민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28일 국무부대변인의 말은 최근 잇따른 북한의 군비태세와 관련된 발언과 함께 눈길을 끈다.주목되는 점은 지난 20여일동안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나오며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식량문제와 군사문제를 연결시켜 처음 미국정부의 입장을 밝힌 것은 코언국방장관이었다.지난 11일 전시체제에 있는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뒤이어 15일에는 국무부대변인이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이“1백만명 이상의 군대를 보유할 이유가 없다”며 우회적으로 군비축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또 26일에는 클린턴대통령이 미.일정상회담을 끝낸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경제의 구조적 결함을 지적하며 구조재조정의 필요성을 거론했다.미국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공론화(公論化)하고 있는 배경은 여러가지로 유추해 볼 수 있다.1차적으로는 북한의 자구(自救)노력을 촉구하는데 있지만 정치적 효과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군사비를 과다지출하면서 국민을 굶기는 판에 외부에 지원요청을 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경고의 의미다.국제적인 식량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성의를 보이라는 충고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확립을 위해 북한이 대화에 나서도록 촉구하는데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남북한의 상호 군비축소를 통해 과다한 군사지출을 줄여야 생존할 수 있음을 북한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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