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거품을 아느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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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호 07면

거품이 공공의 적이 된 세상입니다. 미증유의 경제불황 탓이겠죠. 너도나도 거품을 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거품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일까요.
미국 에모리대 물리학과 교수로 있는 시드니 퍼코위츠는 거품이야말로 인류가 풀어내야 할 진정한 비밀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딱히 고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액체나 기체도 아닌, 그러면서 고체와 액체와 기체의 세 가지 상태가 섞여 있는 것이 거품”이라고 정의합니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그는 『거품의 과학』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거품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인류의 문명과 거의 맥을 같이하는 밀과 보리를 볼까요. 여기에 발효의 원리가 작동하면서 거품이 생성됐고 각각 빵과 맥주로 거듭났습니다.

에스프레소 위를 덮고 있는 황금빛 크레마(크림)를 비롯해 아이스크림·마시멜로·탄산음료의 거품은 우리 입맛을 감미롭게 자극하지요. 흔히 스티로폼으로 불리는 고체 거품인 발포 플라스틱이 없다면 안전한 수송에 상당히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젊은이들은 클럽 무대 위 거품 속에서 춤을 추는 것이 대유행이었다죠.

특히 흰 파도 거품은 지구의 기온과 기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바닷물보다 흰 거품이 태양의 복사에너지를 더 많이 반사하면서 온도 균형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가장 신기한 거품 종류로 에어로젤(aerogel)을 꼽습니다. 98% 이상이 공기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가벼운 고체입니다.

‘빌트2’라는 혜성과 만나기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 탐사선에 실려 우주로 날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혜성에서 분출된 입자들을 수거하고 돌아와 태양과 행성, 그리고 생명의 기원을 풀어낼 단초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깨끗하고 무한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거품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물속 작은 기포에 초음파를 쏘면 빛이 발생하는 ‘음파 발광 현상’에 대한 것이지요. 이때 거품 속은 태양 표면보다 뜨거운 섭씨 10만 도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고온을 핵융합에 이용하는 방안에 대해 많은 과학자가 연구 중입니다.

하지만 거품의 구조나 생성원리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풀어내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고체와 액체의 성질을 동시에 지니는 휘핑 크림이 액체 표면을 떠다니는 현상이 대표적이지요. 하찮게 생각했던 것일지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세상에 필요하다고 퍼코위츠 교수는 말하는 듯합니다.

아, 그럼에도 걷어내야 할 거품이 물론 있긴 하죠. 바로 마음에 낀 거품입니다. 욕심, 자만심, 조바심…. 이런 거품은 마음의 눈을 가려 자신의 복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하지요. 옛말에 이르기를 “모든 복의 밭(福田)은 방촌(方寸·마음)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을 좇아서 찾으면 감응해서 통하지 않음이 없다(육조단경·六祖壇經)”고 했습니다. 그 마음은 거품이 없는 온전한 모습이어야겠죠. 서로에게 복을 나누고 싶은 신년 벽두, 혹여 마음 속 거품이 있다면 그것부터 깨끗이 씻어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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