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위기일수록 기본이 정석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 신뢰=지난 연말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의 기본은 습관이다. 식습관, 생활습관이 곧 건강을 좌우한다. 사회와 국가의 건강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식습관은 급하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어서 급하게 먹고 체해서 토해낸 손실이 적잖다. 지난해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과 그에 연이은 촛불사태가 대표적인 경우다. 중요한 것은 때를 아는 것이지 서두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급함을 속도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나 걱정이다. 더불어 정책 집행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 획득임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 원칙=신뢰는 원칙이 만든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생활습관은 원칙 없이 불규칙하다. 허물어진 지 오래인 법과 기본질서가 다시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 국정의 기본이다. 준법은 바보 같은 일이고 편법이 영리한 일처럼 되어 버린 사회가 결코 건강할 리 없다. 비록 법을 만드는 국회부터가 난장판이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방치해선 안 된다. 법과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래야 산다.

# 약속=대통령은 새해 국정운영의 4대 기본 방향을 “비상경제정부 구축과 경제위기 극복, 민생을 촘촘하게 살피는 따뜻한 국정, 선진일류국가를 향한 중단 없는 개혁, 녹색성장과 미래 준비”라고 밝혔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렸다. 바로 재산헌납이라는 국민과의 약속 이행이다. 리더의 힘은 약속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 재단설립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에두르지 말고 곧장 국민에게 직구 던지듯 국정연설에서 재산헌납의 이행을 선언했으면 새해 벽두가 얼마나 신선했겠는가. 다른 것은 속도전인데 왜 그것만 완행열차인지 모르겠다.

# 인정=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경제를 걱정한다. 하지만 진짜 걱정은 정치다. 경제는 위기임을 모두가 인식하기 때문에 결국 극복해 낸다. “우리에겐 위기극복의 유전자가 있습니다”라는 배순훈 박사의 책 제목처럼 우리는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고 돌파해 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치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정치적 혼란의 근원은 핵심만 콕 집어 말하자면 ‘대선 불복’이다. 대선이 끝난 지 일 년이 훌쩍 지났건만 여전히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만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탄핵 국면이란 극한 상황으로 이 문제가 의외로 일찍 해소됐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엔 이 문제가 확고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오히려 질질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거의 모든 법안에 ‘MB악법’이란 꼬리표가 붙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기본이 된 나라라면 비판할 때 하더라도 대통령의 존재는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 희망=새해이다 보니 곳곳에서 너도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본이 흔들린 사회에서는 희망이 뿌리내리기 어렵다. 기본이 다시 서야 희망도 있다. 그러니 기본을 다시 세우자. 신뢰·원칙·약속·인정의 기본을 확보하자. 그 위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제대로 그려보자.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