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캐기위해 황장엽씨 접근 각축 - 각국 대사관 부산.국제첩보戰 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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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황장엽(黃長燁)씨를 놓고 서울에서의 정보전이 개막됐다.미국.일본은 물론 중국.러시아도'황장엽 정보파일'수집에 정보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우리 정부관계자가 21일 전했다.

미국은 黃씨가 가져온 정보를 빼려고 전체 행정부가 나서 뛰고 있다.지난 2월22일 청와대에서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매우 흥미있는 인물이다”며 黃씨를 주요 화제로 삼았다.

올브라이트는“黃씨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노골적으로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3월29일 청와대를 찾은 앨 고어 부통령은 金대통령에게“(黃씨를)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정보공유 문제를 환기했다.지난 10일 청와대에 들어온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도 마찬가지였다.이들에게 金대통령은“협조할 것”이라며 원론적 답

변을 해주었다.

일본도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14일 도쿄를 방문한 유종하(柳宗夏)외무장관에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이케다 유키히코(池田行彦)외무장관은 정보지원을 부탁했다.

이 정도는 겉으로 드러난 분위기다.黃씨를 둘러싼 정보전에 서울에 나와 있는 각국 정보기관은 사활을 걸고 있다고 정부의 외교소식통이 전했다.서울주재 미.일.중.러시아 대사관에는 태스크 포스가 구성돼 있다고 한다.黃씨는 세계 정보사상 전인미답(前人未踏)인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세계를 알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는 비상이 걸려 있다고 한다.아서 브라운 지부장은 우리측 고위관계자에게 미국의 관심을 수시로 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안기

부와 CIA가 정보교환 및 공작지원에 관해 모종의 극비협정을 맺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당시 CIA부장인 존 도이치와 권영해(權寧海)안기부장은 정보교류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정보기관 특성상 드물게 그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미국측은 여러 가지 공을 들이고 있다.지난달 30일 반기문(潘基文)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극비에 필리핀에 날아가 피델 라모스 대통령에게 黃씨의 체류연장 안전문제를 요청했을 때 미국은 측면 지원했다.

정부 관계자는“첩보위성.U2R첩보기로 얻은 북한 기술정보(techint)를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우리로서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면서“미국은 黃씨를 통한 인적 정보(humint) 교류로 한.미 공조체제를 확인하고 싶다고 한다”고 전했다.미국측 요청의 핵심은 黃씨에 대한 독자적 신문이다.우리측은 일정기간이 지난 뒤 미국측에 신문기회를 줄 방침이나 미국은 그 시기를 최대한 단축해 달라는 것이다.

서울중학동 일본대사관에는 내각 정보조사실 산하의 요원들이 증원돼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중국의 국가안전부는 黃씨의 베이징(北京)체류 당시 협조해 준 점을 들어 안기부에 접근하고 있다.러시아의 대외첩보국(SVR)도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成蕙琳)씨 망명사건에 지원해 준 점을 환기하고 있다.우리측의 합동신문조가 조사에 본격 들어가면 정보전은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안기부는 이번 사건이 북한정보에 관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기회로 보고 의욕적이다.안기부는 80년대 망명한 최은희.신상옥씨가 풀어 놓은 정보도 미국으로부터 얻은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다.이 관계자는“이는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한반도와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잡는데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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