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정치' 제도개혁 서두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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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보사태는 우리나라가 총체적 부패구조로 얽혀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특히 정치권 수사를 볼 때 이 나라에 과연 돈 안 받은,부패하지 않은 정치인이 있을까 하는 총체적 불신의 절망적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부패한 정치자금문제는 정권과 국회와 정치인의 도덕성.신뢰성.정당성의 기반을 파괴하기에 이르렀고,돈과 정치의 이런 야합적(野合的)구조가 계속된다면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감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한보사태로 벌써 몇달째 고통과 혼란.불안.불신의 터널에 갇혀 있지만 이런 한보사태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한보적(韓寶的)'인 우리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3류,4류정치를 청산하지 못할 것이며,우리의 2

1세기와 선진국의 꿈도 그림의 떡이 되고 말 것이다.평소 지도자로 자처하며 국민위에 군림하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야말로 돈 안드는 정치,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의 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제도개혁 빨리 公論化해야

중앙일보는 이런 문제인식 아래 돈 안드는 정치의 실현을 위한 제도와 관행의 개혁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정치권과 정부,사회 각계각층에 대해 하루빨리 이 문제를 공론화(公論化)해 구체적인 개혁방안을 이끌어내도록 촉구한다.특히 오는 대

통령선거마저도 음성적 자금동원으로 치러질 경우 다음 정권의 정당성.도덕성까지도 불안하게 될 것이므로 대선과 관련한 개혁작업은 빠른 시일안에 착수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 정치구조는 방대한 정치자금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대통령선거에선 후보마다 몇천억원의 돈을 뿌리고,총선에서도 지역구 출마자들이 몇 10억원을 쓰는게 상식처럼 돼 있다.평소 지구당관리비만 해도 2천만~3천

만원이 예사로 들고 의원활동비.경조비.인건비도 천만원대가 보통이다.요컨대 돈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게 돼 있고,정치를 하자면 돈을 조달하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합법적.양성적 자금은 이런 거액의 수요에 비해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결국 부정과 비리,야합과 결탁 등 부패.타락방식의 자금조달이 판을 치게끔 구조가 돼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부터 깨야 한다.그러자면 현행 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등을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또 고질적인 보스의 사당(私黨)정치로 말미암아 계파의 세력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음성적 자금조달도 우리 정치의 크나큰 병폐다.그런 점에서 정당의 운영과 조직 등에도 일대 혁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회에 개혁特委 설치하라

우리는 이런 개혁작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먼저 각 정당 모두 돈 안 드는 정치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는 특별연구팀을 당내에 설치하도록 제의한다.그리고 국회에 제도개혁특위를 설치토록 권고한다.특위가 각 당의 안(案)을 토대로

개혁방안을 만들되 우선 시간이 급한 대선과 관련되는 부분부터 신속한 결론을 내려주기 바란다.

다음으로 정치학회 등을 위시한 학계.법조계.경제단체 등도 활발하게 이 문제를 논의해 나름대로의 방안을 제시해주길 바란다.각계의 이런 호응이 있어야 더 나은 개혁과 빠른 추진이 가능하게 된다.

끝으로 국민 모두가 동참해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제도의 정착과 성공여부는 국민에게 달려 있다.국민이 정치인으로부터 대접받고 돈받기를 거부하면 돈정치가 발붙일 수 없다.

더이상 우리가 돈정치에 발이 묶여 좌절과 굴욕.퇴보와 소모를 되풀이 할 수는 없다.돈정치는 이제 한보사태로 끝장내야 한다.

중앙일보는 돈 안드는 정치의 실현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문제제기를 할 것이며 우리의 견해도 잇따라 제시할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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