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정치자금 외국사례 - 미국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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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정치자금의 요체는 투명성이다.국내에서는 한보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치인들의 검은 돈 수수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그러나 관련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뇌물이 아닌'정치자금'이라는 이유를 달아 범법성을 부인하고 있다.'정치자금은 곧 면죄부'라는 등식이 성립하는듯한 착각이다.정치자금의 투명성 여부는 바로 그 정치문화의 투명성을 반영한다.정치자금의 음성화.부패화를 막기위한 선진국들의 정치자금 제도를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미 하원 국제관계위의 더그 비라이더(57.네브래스카)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은 올해 10선의 중진이다.하원의 거물중 하나로

꼽히는 그가 지난해 지출한 정치'비용'은 33만5천7백83달러.지난 11월 선거를

치렀음에도 우리돈으로 3억원이 채 안되는 규모다.같은기간중 그가 모금한 돈은 28만2천6백61달러.5만여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셈이다.비라이더 의원이 모은 자금의 대부분은'푼돈'이다.지역구내 보험.부동산 업자등 기업인들이

정치후원회(PAC)에 낸 기부금 가

운데 14만달러짜리가 한건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거의 1백~2백달러 내외의

소액 헌금이다.우리같은'뭉칫돈'도 없거니와 출처가 안밝혀진'뒷돈'은 더더욱

없다.

미국 연방선거법에 따르면 정치인이 개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기부금의

상한액은 연간 1천달러.만약 상한액을 넘을 경우 헌금하는 쪽이나 받는

정치인이 모두 책임을 지게 된다.벌금은 2만5천달러,고의로 상한액을 넘길

경우 2배인 5만달러까지 벌금을 물게 돼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액수보다 그 투명성이다.정치인이 받는 돈은

수입.지출.회계.보고등 모든 내용이 낱낱이 공개돼있다.액수의 다과를

불문하고 누가,언제,얼마를 어떤 명목으로 주어 어떻게 썼는지를 철저히

밝히게 돼있는 것이다.따라서 이 틀을 벗어난 자금의 음성거래는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다.

정치자금에 대한 명세는 회계사의 검증을 거쳐 연방선거위(FEC)에 분기별로

보고된다.명세서에는 헌금한 사람 혹은 기업의 주소.업종.헌금액과

헌금날짜가 포함된다.지출명세서에는 전화요금.우편료.TV광고비에서

선거요원들의 월급.우편료까지 빠지는 것이 없다.기부의 범주에는 돈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현금기여,노력봉사,물품증여,선거자금 모금티켓 대신

구입,자금대출,은행융자 보증까지 정치헌금에 포함된다.

한마디로 미국에서의 정치자금이란 말뜻 자체가 투명성을 보장한다.돈을 준

인물이나 업체에 대한 상세한 정보,헌금액과 일자가 분명히 공개될때 비로소

정치자금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그리고 FEC에 보고된

정치자금의 흐름은 인터넷을 통해 언제,어디서든,또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돼있다.

시민단체들도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곳곳에서 눈을 번득이고 있다.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이같는 형태의 시민단체.기관의 수는 전국적으로 1백여개가

넘는다.비라이더 의원의 재정담당관 제임스 휴이트는“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전국 각지에 연락망

을 갖고 있는 각종 선거자금 감시단체들이 정치인들에게 있어 매우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말한다.이들 단체가“주요 언론사와 유대를 갖고

지속적으로 정치인들의 돈흐름을 감시하기 때문”이다.미국의 경우 FEC가

생겨 연방정부 차원에서 정치자금의 흐름을 본격 감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1년부터다.그러나 이같은 제도 이상으로 미 정치자금 운용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 있다.휴이트 재정담당관이 지적했듯'바로 유권자들의 눈'이다.정치자금에 연루된 정치인들의 비리는 다음번 선거에서 가차없이 심판받게 된다는'믿음'과'전통'이 바로 미 정치권으로

하여금 돈과 권력의 결탁을 막는 가장 중요한 견제장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사진설명>

미국의 정치헌금은 1백~2백달러의 소액헌금이 주종을 이루며 그 내용이

낱낱이 공개될 정도로 투명하다.사진은 지난해 8월 열린 봅 도울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공화당전당대회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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