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문회 짜임새 있는 운영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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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보청문회가 정태수(鄭泰守)총회장에게 변명의 기회만 제공했다는 답변이 76%에 달하는 중앙일보의 여론조사는 청문회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해주고 있다.입을 굳게 봉한 鄭씨에 대한 분노도 컸으나 그보다는 그의 입을 열지 못한 의원들의 한계를 보면서 국민들은 혀를 찼다.19명의 특위위원들이 14시간에 걸친 추궁결과가 고작 鄭씨에게 변명장소만 제공한 것이었다면 앞으로 남은 일정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우선 의원들의 준비가 부족했다.한보국회 후부터 2개월 가까이 지났는데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든다.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청문회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관련부처 등으로부터 기초자료를 모으고,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심층 조사를 벌이고,관련자들의 면밀한 사전면담 등을 통해 증인들이 빠져나갈 수 없게 완벽한 그물을 쳐야 한다.준비가 없으니“이런 설(說)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의 질문이 고작이다.증인이 오히려“의원님,잘 알고 질문

하십시오”라는 힐난을 하니 무엇을 밝혀낼 수 있겠는가.미국 워터게이트 청문회때 5개월간에 걸쳐 관련자들을 집중적으로 사전 인터뷰한 예를 보더라도 준비가 없이 자백에만 의존해 청문회가 성공할 수는 없다.

청문회 운영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송곳같은 질문은 못하고 훈계.호통.애소.설교가 판친다.증인이“모른다”“아니다”고 할 경우 후속추궁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니 변명의 기회만 주게 되고,같은 내용을 반복해 질문하니 효율성이 떨어진다

.더욱 가관은 사건규명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당의 연루설 캐내기,소속정파나 보스 변명해주기 등으로 시간을 소비한다.

특위는 지금이라도 전열을 다시 짜야 한다.개인플레이 대신 정당별로라도 팀워크를 통해 자료도 공유하며 분야를 나눠 계획적이고 효과적인 추궁을 해야 한다.질문의 초점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적인 추궁이 되도록 해야 한다.연설은 집어치우고 면도칼 같은 단답(短答)유도형 추궁이 돼야 한다.증인의 여유와 조롱대신 진땀을 뻘뻘 흘리는 분위기가 돼야 진실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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