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크레이그 주연 ‘디파이언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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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95년 뉴욕 타임스에는 주스 비엘스키라는 낯선 유대인 노인의 부음기사가 실렸다. 영화감독 에드워드 즈윅의 오랜 친구이자 시나리오 작가 클레이 프로만은 큰 감동을 받았다.

“유대인 3형제가 나치에 대항하고 벨로루시의 깊은 숲 속에서 1200여 명의 유대인을 숨겨 구해냈다는 사연이었어요. 유대인들이 별다른 반항 없이 수동적으로, 심지어는 기꺼이 죽음을 맞았다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랐어요. 뿐만 아니라 평범한 한 남자가 사람들이 지닌 힘과 리더십을 발견하고, 기적 같은 일을 해냈다는 스릴 넘치는 이야기였죠.” 중앙일보와 서면인터뷰에서 즈윅 감독이 들려준 얘기다. ‘라스트 사무라이’ ‘블러드 다이아몬드’ 등 굵직한 드라마에 강한 그는 이 3형제의 실화를 최신작 ‘디파이언스’(1월 8일 개봉·사진)로 완성했다.

‘디파이언스’는 이들을 액션영웅이 아니라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싸우는 인간적 영웅으로 그려낸다. 가족을 몰살시킨 원수를 갚고 숲으로 몸을 숨긴 맏형 투비아(다니엘 크레이그)는 학살을 피해 삼삼오오 모여든 유대인들을 보호하면서 점차 지도자로 부상한다. 반면 둘째 주스(리브 슈라이버)는 이런 형에 반발,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주장하며 러시아군에 합류한다.

007시리즈로 세계적 스타덤에 오른 주연 크레이그, 상대적으로 낯선 배우 슈라이버의 연기대결이 팽팽하다. “크레이그는 (007 이전에) ‘레이어 케이크’ ‘뮌헨’ 등으로 뛰어난 연기력을 이미 알고 있었죠. 대단한 카리스마와 사려깊은 성품을 동시에 지닌 보기드문 배우죠. 이런 힘에 맞설 상대가 필요했어요. 슈라이버의 연기력은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서 익히 보아왔거든요.”

맏형을 따르는 막내 아사엘은 ‘빌리 엘리엇’의 아역스타 출신 제이미 벨이 맡았다.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만나 숲속 결혼식까지 치르는 역할이다. “벨은 다양한 역할을 통해 성인이 돼가는 모습을 보여왔죠. 이번 역할은 그 성장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세 배우가 촬영장 안팎에서 정말 형제처럼 어울린 것이 자연스러운 연기로 표현됐다고 봅니다.”

나치와의 대결보다 더한 긴장은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날은 살을 에는 추위가 대단했어요. 힘들기는 했지만 사실감 넘치는 연기를 최고조로 뽑아내는 탁월한 촉매였죠. 더구나 그 장면에서 언제 총이 발사될지, 다른 출연진에게 알려주지 않았거든요. 충격에 휩싸인 사람들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예요.”

최근 할리우드에는 이외에도 톰 크루즈 주연의 ‘작전명 발키리’ 등 나치시대를 다룬 영화가 또다시 붐을 이루고 있다. 이런 소재에 우호적인 2월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임박한 데다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을 박해하고 학살한 나치의 악행이 어마어마했다는 방증이다. ‘디파이언스’는 그 악의 거대함보다 그에 맞서는 보통사람들의 용기와 힘에 초점을 맞췄다. 15세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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