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을 살리자] “미술관 본래 기능에라도 충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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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들었다지만 연간 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리고, 이제는 허울뿐인 명색이라지만 ‘한국 미술계의 수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이 기본으로 돌아가 제 기능을 하도록 살려야 하는 이유다. [과천=강정현 기자]


#2. 뉴욕 현대미술관(MoMA) 케시 할브라이시 부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술관은 미술이라는 나라의 여행을 막 시작한 사람들이 찾는 곳, 따라서 그들에 맞는 언어로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가 즐겨 소개하는 일화가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자원봉사자가 전시를 소개하면서 “아시다시피 앤디 워홀은…”하고 실컷 설명한 뒤 “앤디 워홀 다 아시죠?”하고 확인했는데, 관객의 상당수가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을 모르더라는 얘기다. 상업화랑이 미술을 어느 정도 알고 찾아오는 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미술관은 초심자들의 첫걸음에 더욱 신경써야 함을 일깨워주는 현장 보고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퐁피두센터와 뉴욕 현대미술관을 세계 대표 현대미술관으로 꼽는다. 우리 국립현대미술관도 장기적으로는 이 두 미술관을 어느 정도 본받아야 한다고들 강조한다. 그렇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이 나아갈 방향은 뭘까. 단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보통의 미술관이 되라, 즉 미술관의 본래의 역할이라도 충실히 하라”(상명대 이인범 교수, 국립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출신)는 일갈이다. 한국 미술계에 방향을 제시할 소장품 수집과 연구, 이를 통한 전시는 건너뛰고 세세한 기획전이나 정파적 전시에 매달려온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다.


미술관서 여는 생존작가 유일의 개인전인 ‘올해의 작가’전도 도마에 자주 오른다. 매년 큐레이터들이 미술가 한 두 명을 선정해 이듬해 전시를 열게 하는 형식이다. 95년 시작해 회화·조각·도예·건축·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쟁쟁한 이들이 선정돼 전시를 열었다. 그러나 장르별 안배를 당연시하는 미술관측 처사에 ‘나눠먹기’ 논란이 나온다. 또한 정작 참여해야 할 국제적 작가는 ‘이듬해 전시를 열어달라’는 촉박한 일정에 응할 수 없어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은 “퐁피두센터는 최근에야 프랑스의 대표적 설치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64)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만큼 생존작가의 개인전을 쉽사리 열지 않는 무게와 권위, 객관성이 있다는 얘기다. 시간을 두고 역사의 관점에서 동시대 미술을 바라봐야 미술관에 권위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전시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김선정 교수는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단일 전시공간으로는 여전히 많은 관람객이 오는 곳이 국립현대미술관이다. 특히 학생 단체관람객이 많은데, 실기에 치우친 우리 미술교육의 맹점을 보완할 감상교육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내 분관 시대 맞이하나= 요즘 국립현대미술관이 안고 있는 화두는 시내 분관과 민영화다. 떨어지는 접근성 보완을 위해 올 여름, 소격동 기무사터에 국립미술관을 짓자는 범미술계 운동이 벌어졌다. 문화부 용호성 예술정책과장은 “소격동 기무사 부지 매입 비용으로 200억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으나, 이 부지의 용도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다만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 분관 계획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덕수궁 분관에 이어 또다른 시내 분관이 생기면 이에 맞는 콘텐트 개발도 필요하다. 또한 행정안전부가 추진중인 정부 산하기관 민영화에 국립현대미술관도 포함돼 있어 미술계에서는 논란이다. 한 사립미술관 큐레이터는 “민영화되면 다른 사립미술관이나 상업화랑과는 달리 국립미술관이 맡아야 할 역할 수행에도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어떤 수장이 와서 내년이면 불혹을 맞는 국립미술관의 비전을 수립하고, 이처럼 산적한 문제를 교통정리할지가 관심사인 시점이다.

권근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김현일 인턴기자(서울대 동양화과 3)가 이 기사 작성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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