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85km 홍드로 ‘시구의 여왕’으로 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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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08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빼 입은 두산 유니폼 뒤에는 ‘1번 홍드로’라고 큼직하게 적혀 있었다. 10월 31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과 SK의 5차전 경기.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3만 관중의 시선은 시구자로 나선 배우 홍수아(22·사진)의 손끝에 집중됐다.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연예)의 아이콘 홍수아

포수 사인을 읽는 표정엔 벌써 9회 말 투아웃인 것 같은 긴박감이 흘렀다. 공 하나로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집념마저 보였다. 그녀는 양손을 늘어뜨려 주위를 살핀 다음 다시 목표물을 주시했다. 이내 몸이 활처럼 굽어지면서 손이 허공을 가르자 공은 포수의 미트로 빨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였다. 관중들은 ‘시구의 여왕’ 홍수아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1986년 6월 30일생, 신장 1m66㎝, 몸무게 44㎏. 뭔가 부족해 보인다면 뒤에 ‘시속 85㎞’를 붙여 보자. 이날 스피드 건에 찍힌 공의 속도였다. 웬만한 성인 남성에게도 쉽지 않는 속도다. ‘외계인’이라 불리는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뉴욕 메츠)와 투구 자세가 닮았다고 하여 네티즌들은 그녀에게 ‘홍드로’라는 애칭을 붙여 줬다.

이쯤 되면 ‘홍드로 신드롬’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최고의 거물 투수가 영입됐다.” “국가대표 에이스감이다.” “올해 야구계의 최대 이슈다.” 그녀에 관한 인터넷 댓글만 보면 마치 수퍼 루키가 탄생한 분위기다. 두산의 김경문 감독으로부터는 명예 선발투수 위촉장까지 받았다. 가냘픈 몸을 사리지 않고 힘차게 공을 던지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26일 KBS별관 근처의 한 식당에서 그녀를 만났다.

-요즘 많이 바쁜가 봐요. 인터뷰 시간을 잡기가 힘드네요.
“아무래도 드라마 촬영에 뮤지컬 준비까지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보통 새벽 2~3시쯤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5시에 일어나야 되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니까 행복해요.”

-수아씨의 시구 모습에 대해 네티즌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할 뿐이죠. 복장을 갖춰 입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는데, 다행히 팬들이 진심을 알아주신 것 같아요. 요즘은 사인해 달라는 분들도 ‘홍수아’가 아니라 ‘홍드로’라고 써 달라고 하세요.”

-강속구에 비법이 있는지.
“(웃음) 글쎄요. 야구에 맞는 편안한 복장이겠죠. 그리고 평소 연습을 자주 해주는 게 중요해요. 캐치볼 같은 거요. 투수 같은 경우는 오래 쉴수록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감이 떨어지면 안 되니까요. 너무 심하게 하니 어깨가 아프던데요.(웃음)”

-연말 각종 시상식에서 과감한 노출 의상을 선보인 데 대해 야구로 인한 이미지를 완화하려는 시도라는 지적도 있는데.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입을 뿐이에요. 야구장에서는 유니폼을 입는 게 맞고, 시상식에서는 드레스를 입는 게 당연하잖아요.”

-2005년 7월 첫 시구 때, 어떤 생각으로 마운드에 올랐나요?
“전 처음부터 운동화와 편한 복장을 갖추고 시구를 했어요. 선수들의 소중한 공간(마운드)을 하이힐 신고 움푹 파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공 던지러 가는 거지 내 몸매를 뽐내러 가는 게 아니니까요. 올해 한국시리즈에서는 유니폼을 입었는데, 제가 바지까지 다 갖춰 입겠다고 했어요. 홍드로를 사랑해 주시는 많은 분에게 보답해 드리고 싶었어요.”

-공 던질 때 일그러지는 표정이 마음에 걸릴 수도 있는데.
“힘껏 던지다 보니 표정이 달라지는 건 당연하죠. 처음에는 망가진 얼굴을 네티즌들이 합성해 올리고 해서 놀랐는데, 지금은 저에 대한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예쁜 척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일그러진 표정으로 던지는 것을 팬들이 더 좋아해 주시니까요.”

2004년 인기 시트콤 ‘논스톱5’를 통해 TV에 데뷔한 홍수아는 발랄하고 톡톡 튀는 연기로 팬들에게 처음 알려졌다. 최근 출연 중인 KBS 드라마 ‘내 사랑 금지옥엽’에서도 천방지축 왈가닥 철부지 역할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 본 홍수아는 알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고 다소 내성적이기까지 한 숙녀였다. 마운드에서의 진지함은 바로 그녀의 내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뮤지컬은 처음이죠?
“네. ‘진짜진짜 좋아해’라는 뮤지컬인데요. 야구부 에이스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지고지순한 성격의 ‘오정화’ 역을 맡게 됐어요.”

-지금까지의 생기발랄 이미지와는 정반대네요.
“네. 역할이 매우 마음에 들어요. 여성스럽고 차분한 오정화의 성격이 저와 많이 비슷하거든요. 제가 보이는 것보다 의외로 상처도 잘 받고 소심한 면이 있는데, 오정화 역을 할 때는 마음이 편안해지곤 합니다.”

-앞으로 희망은.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 올라 탄탄하고 진실된 연기로 항상 실망시키지 않는 모습 보여 드리고 싶어요. 시구가 됐든, 연기가 됐든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가 되는 게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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