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는 꿈을 꾼 당신 마음이 황량한가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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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15면

사람이 사기를 당하거나 도둑을 맞았을 때 화가 나는 것은 꼭 돈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왜 내가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했는지 우선 나에게 화가 나고, 나를 우습게 생각하고 속여 이익을 챙긴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사실은 더 크다. 돈은 우리가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지만, 심리적 에너지의 상징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지갑이 든든하면 사람들을 만나도 자신감이 들고, 저금통장에 다만 얼마라도 돈이 있을 때하고 그렇지 않을 때 기분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꿈에 지갑을 잃어버려 쩔쩔맨다든가, 도둑을 맞는다든가, 강도를 당한다든가 하는 장면이 나오면 현실 상황에서 돈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물어보고 돈에 대한 집착에 대해 알아볼 필요도 있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피분석자의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된 것은 아닌지도 짚어 본다. 민담이나 신화를 분석할 때도 그렇다. 예컨대 흥부가 돈이 떨어져 형에게 갖은 구박을 당하다가 박이 갈라져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은 꼭 벼락부자가 되는 상황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황량하고 메마른 흥부의 심리가 보잘것없는 제비를 보살피고 도와줌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풍요롭게 변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금은보화가 끝없이 나오는 주머니나 항아리, 혹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 등을 갖고 있던 이들이 욕심을 부려 약속한 양 이상 끄집어내면 마술적 힘이 사라지는 민담의 주제도 돈뿐 아니라 자신의 에너지를 적절하게 아껴 쓰라는 메시지로 이해해도 된다.

요즘 큰 부자들은 나스닥 창립의 주역이었던 메이도프 같은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중산층은 평생 모은 돈을 펀드와 부동산에 투자했다 반 토막이 나고, 아예 없는 사람들은 땟거리가 없어 힘들어한다. 투자한 것이 잘못되어 자살하는 이들에 대한 소식도 들리고, 재산 문제 때문에 부부·부모자식·친지간에 서로 원수가 되는 경우도 많다. 돈이 많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갖고 있던 것을 빼앗겼다는 박탈감이 심리적으로 사람들을 더 황량하게 만든다. 부자가 오히려 더 구두쇠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관대한 것은 돈을 빼앗기는 기분을 아무래도 부자가 더 많이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방문했던 젊은 헤지펀드 매니저의 집은-집값 비싸다는 맨해튼에서-방이 14개였고,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 같은 유명 화가의 그림이 수백 점, 그릇과 가구도 모두 예술가의 작품이었다. 파생상품을 굴려 받은 돈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늙은 걸인과 복권 사는 가난한 흑인들 곁을 지나면서 미국식 분배 모델이 과연 절대선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다행인지 힘든 와중에도 우리 사회의 기부금은 늘어나고 복권이 팔리는 액수는 급격하게 줄고 있다고 한다. 경제적 위기를 겪으면서 돈과 관련된 사람들의 콤플렉스가 조금씩 해소되면 빈부 차가 큰 구미의 아류가 아닌, 한국인 특유의 상생과 중용의 투자와 소비문화가 정착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희망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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