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없는 ‘깔세방’에‘임대료 공짜’ 빌딩도 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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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26면

‘임대’ 플래카드가 붙은 서울 강남 지역의 한 빌딩. 강남·여의도·명동 일대의 빌딩에도 경기 침체로 빈 상가와 사무실이 부쩍 늘었다.

경기도 성남시 도촌 지구에서 동진개발은 최근 ‘1년간 공짜 임대’를 내걸고 상가를 분양하고 있다. 예컨대 4층의 실면적 30평 상가는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가 120만원인데, 상가 임차인은 1년간 보증금의 10%(400만원)만 내고 월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분양받는 사람은 임차인 대신 동진개발로부터 보증금과 임대료를 받으므로 손해 볼 게 없다. 회사 측 입장에서도 임차인이 있어야 분양이 수월하다. 최근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새로운 상가 임대차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기 한파에 우는 상가

‘공짜 임대’는 서울 교외의 물류창고 등에서 오래전부터 유행했다. 물류창고는 다양한 시설이 필요한데 그런 시설공사에만 2~3개월이 소요된다. 그 기간에는 창고 구실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창고 소유주는 처음 2~3개월간 월세 없이 관리비만 받는 조건으로 임차인을 유치했다. 지금은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런 공짜 임대 방식이 상가나 빌딩으로 확산되고 있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스타타워는 한때 임대 기간이 3년 이상이고 임대면적이 700평 이상이면 입주 후 2개월간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70평당 한 대꼴로 무료 주차 공간을 제공하는 옵션을 내걸었다”고 말했다. 유명 브랜드 업체를 유치해 건물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에도 건물주가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깎아 주는 사례가 있다.

부동산중개업소에도 관리비만 내면 일정 기간 무료로 빌려주겠다는 물건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이런 물건에는 임차인이 공짜 임대 기간만 채우고 상가를 비울 것을 우려해 부대조건을 다는 게 원칙이다. 동진개발 지현용 전무는 “임대차 계약 기간을 통상 2년보다 긴 4년으로 하고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폐업하면 약간의 위약금을 물리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짜 임대의 변형으로 반값 월세 등의 할인 방식도 등장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직영점의 건물주에게 매달 월세를 주는 방식 외에 매출의 일정 비율을 임대료로 지급하는 수수료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건물주와 스타벅스 측이 수수료율 13%에 합의할 경우 월 매출이 1억원이면 1300만원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식이다. ‘보증금+수수료’와 ‘전액 수수료’ 방식이 함께 쓰인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건물주가 매출액 집계와 브랜드를 신뢰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수수료 방식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수료 방식은 백화점에서 널리 이용된다. 백화점은 물품을 판매하는 판매업처럼 보이지만 엄밀하게는 부동산임대업이다. 브랜드 업체 역시 수수료 매장 형태로 출점하는 사례가 많다.

기부채납 방식이라는 것도 있다. 건물 신축 비용과 관련 비용을 모두 임차인이 부담하되 약정 기간이 끝나면 건물 소유권을 토지 소유주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상가뉴스레이다 선종필 대표는 “주로 주요 도로변 나대지(빈 땅)에 패밀리레스토랑 등이 진출하면서 이런 형태로 임대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있다”며 “개별적 협의에 따라 일정한 보증금을 납부하는 경우도 있고, 건물 공사비만 납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때 건물의 임대차 기간은 통상 20년이 넘지 않는다. 이는 건축물의 토지 점유 상태가 20년을 넘길 경우 임차인이 토지 소유권까지 주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깔세’는 일정 기간(대체로 2~6개월) 임차하고 싶을 때 보증금 없이 월세를 한꺼번에 지급한 후 임대차 기간이 끝나면 계약을 종료하는 방식이다. 빈 상가를 땡처리 매장이나 단기 화장품가게, 부동산중개업소로 운영할 때 이런 방식이 애용된다. 폐업하는 가게가 급증하면서 땡처리 물건만 모아 파는 깔세방이 늘어나고 있다. 상권이 좋은 대로변, 시장통, 전철 역세권이 깔세방 입지로 인기가 있다. 점포 정식 임대가 이뤄지면 깔세 임차인이 즉각 나간다는 조건이 붙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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