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59. '동병상련' 정민태·박찬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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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태(34)와 박찬호(31)는 각별하다. 세살 차이지만 학교(한양대)는 정민태가 4년 선배다. 정민태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이자 국내 프로 스포츠 최고액 연봉(7억4000만원) 선수다. 박찬호는 설명이 필요 없는 메이저리그의 '코리안 특급'. 둘은 1991년 겨울 처음 만났다.

그때 박찬호는 한양대 입학을 앞둔 공주고 3학년, 정민태는 한양대 4학년 졸업반이었다. 한양대 측은 대학야구 시즌이 끝난 뒤 프로 스카우트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박찬호를 한달간 부산으로 내려보냈다. 부산엔 역시 한양대 진학을 앞둔 또 한명의 유망주 차명주(두산)가 있었다. 한양대 측은 박찬호를 차명주의 집으로 내려보내면서 '보호자'로 정민태를 함께 보냈다.

"찬호는 그때부터 뭔가 달랐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하고, 팔굽혀펴기를 거르는 날이 없었어요. 시간만 나면 투구 자세에 대해 물어보고…. 뭔가 배우려는 집념이 강했죠."(정민태)

"민태 형한테 배운 게 정말 많아요. 몸 관리도 철저하고, 마운드에서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많이 가르쳐줬죠. 투수로서 눈을 뜨게 해준 선배가 민태 형이죠."(박찬호)

둘은 그때 한달 동안 함께 보내면서 절친해졌다. 그 뒤 정민태는 프로에 입단했고, 박찬호는 정식으로 한양대 유니폼을 입었다. 박찬호는 2학년을 마치고 메이저리그로 갔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로 간 뒤 둘은 박찬호가 귀국할 때면 가끔 만나 서로를 격려했다.

여기서 잠깐, 올해 둘의 성적을 보자. 정민태 3승6패에 방어율 5.43, 박찬호 2승4패에 방어율 5.80. 부진한 내용도 비슷하고 기록도 비슷하다.

둘 다 비슷한 부진을 겪고 있는 이유에도 공통점이 있다.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현대 김시진 투수코치는 "정민태의 구위에는 큰 문제가 없다. 직구 스피드도 지난해와 다를 게 없고, 변화구 구위도 괜찮다. 1차적인 문제는 정신적 부담이다. 최고액 연봉선수라는 부담이 커 보인다. 또 못 던졌을 때 따르는 주위의 질책에 지나치게 예민한 것 같다. 좀더 깊게 분석하면 볼이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에서 오는 조급한 승부 탓"이라고 지적한다.

박찬호의 부진이 반복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팀 내 최고액 연봉 1300만달러(약 156억원)에 대한 주위의 기대가 부담이 되고, 부진에 따른 현지 언론의 질책 또한 날카롭다. 또 부상에서 재기했음을 확인하고 싶은 스스로의 욕망도 마운드에서 그를 자꾸 서두르게 만든다. 그럴수록 부진의 물레방아는 돌고, 또 돌아간다.

동병상련의 정민태와 박찬호. 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평상심'이다. 정민태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다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마운드에서 편하게 던지는 데만 전념할 겁니다"라고. 박찬호도 말한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겁니다. 이래도 히히, 저래도 히히, 여유있게 하겠습니다"라고. 맞다. 투수가 평상심을 잃는 순간 승부는 손끝을 떠난다. 욕심이 앞서고 부담에 쫓겨서는 제대로 된 열매를 딸 수 없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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