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오락가락 답변 민망 - 첫 국정조사 마친 검찰내부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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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검찰이 4일 열린 국회 한보특위 수사기록 검증의'후유증'을 앓고 있다.후유증은 정치권에 대한 비난과 매끄럽게 답변하지 못한 검찰 지휘부에 대한 불만이 어우러져 상당기간 앙금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검찰총수가 질문공세에 시달리는 것을 처음으로 본 대부분의 검사들은“일을 저지른 장본인인 국회의원들이 검찰총장을 죄인다루듯 해도 되느냐”고 흥분했다.

대검의 한 수사관계자는“소위'정태수 리스트'때문에 최고사정기관의 수장인 검찰총장이 정치인들로부터 뭇매를 맞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명목이야 어쨌든 한보 돈을 넙죽넙죽 받아온 정치인들은 검찰총장 사퇴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시종 TV중계를 지켜봤다는 서울지검의 중견검사는“검찰총장을 대하는 의원들의 언행에 분통이 터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라고 열을 올렸다.

또“검찰총장의 답변이 오락가락해 민망스러웠다”는 불만도 많았다.

한 부장검사는“수사기록과 답변자료만 제대로 파악했으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정치자금 관련 질문에 검찰총장이 왜 그리 갈팡질팡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그는“검찰총장이 대선자금 부분도 수사중이라고 답했다가 사건 핵심이 아닌 만큼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말을 바꾸는가 하면 계속 수사중인 사건과 관련있는 내사.수사자료는 국정조사대상이 될 수 없다고 일축해버릴 수 있는'리스트'공세에 말려

들어 자신없는 모습만 내비쳤다”고 평가했다.

대검 고위관계자는“감사기능을 가진 국회와 행정부처들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뭘하다 수사책임자까지 바꾸며 수사에 전념하고 있는 검찰 태도를 왈가왈부하느냐.나라가 쑥밭이 되든 말든 온갖 설을 다 끌어모아 정치인 수사를 하자는 것이

냐”고 분개하기도 했다.

또다른 간부는“제.개정한 정치자금법에 선거.정치자금 형사처벌 근거를 없애놓은 국회의원들이 정치권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는 대선자금 수사를 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보

로비 혐의가 있는 의원들을 겨냥하기도 했다.

한편 의원들이 정치인 수사의'칼자루'를 쥔 신임 중수부장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치켜세운데 대해 당사자인 심재륜(沈在淪)중수부장은“정치권 평가는 일희일비할 가치가 없으며 수사는 법률과 국민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영민.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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