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칼럼

잉글리시 링크스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잉글랜드 서부 해안 사우스포트에 위치한 Royal Birkdale(로열 버크데일) 골프장. 어딘가 낯 익은 이름일 것이다. 2005년 장정 선수가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컵을 안고 샴페인을 뒤집어썼던 역사적인 장소. 또한 바로 올해 열렸던 제137회 브리티시 오픈의 무대이기도 했다.

명문 골프장의 랭킹을 따지는 일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간단치가 않다. 일단 순위를 매긴 주체와 연도에 따라 순위에 등락이 있고, 각 골프장은 그 중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위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잉글랜드 1위 골프장만 해도 족히 3~4개는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거쳐간 골프장들의 랭킹을 언급할 때마다 대략 두루뭉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로열 버크데일(파70. 7,180yd)도 마찬가지. 로열 버크데일은 잉글랜드에서 자주 1위로 꼽히는 골프장이며 세계 랭킹에서도 10위권에 들곤 한다.

골프장 진입로를 따라 들어오면서 슬쩍 보여지는 코스는 전형적인 링크스의 모습이었다. 1889년 오픈 이래 이미 여덟 번의 브리티시 오픈을 치뤄낸 화려한 전적. 우리가 방문할 당시엔 또 한 번의 브리티시 오픈을 준비 중이었으며 이미 두 번의 Ryder Cup과 Walker, Curtis Cups을 치뤄내는 등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골프장 경력이었다.

사실 버크데일에서의 첫 브리티시 오픈은 1940년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무산되었다고. 골프장은 브리티시 오픈 대신 전쟁 기지로 활용되었다 한다. 버크데일 3번 홀 페어웨이 옆에 높이 솟아있는 모래 언덕은 영국 공군의 감시 초소가 되었고 바다를 바라보는 모래 언덕에는 적군 비행기들을 감시하기 위한 해안초소가 세워졌다. 밤새도록 정찰병들이 벙커와 벙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급기야 1941년 독일 폭격기들이 버크데일 골프장 옆에 있는 철로를 파괴하기 위해 떨어뜨린 폭탄에 코스는 완전히 초토화 됐다고 한다. 하지만 덕분에 그냥 ‘버크데일’이었던 골프장은 전쟁 후 전쟁 지원의 공을 인정받아 ‘로열’이라는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로열 버크데일의 클럽하우스는 밖에서 볼 때는 새로 지은 듯한 흰색 건물에 무미 건조함만 느껴졌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클럽하우스로 꼽힌다고 한다. 미의 기준은 시대별로 관점별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 패스.

하지만 클럽하우스 내부에는 역대 경기 사진들이 전체 내벽을 도배하다 시피하여 볼거리가 많았다. 역대 브리티시 우승자들의 환호 모습과 기념품들, 어두운 전쟁의 흔적들까지….

티타임을 받기 위해 프로샵을 찾았다. 예약 없이 당일 라운드를 하겠다고 찾아온 우리의 방문에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던 매니저. 하지만 우리의 여행 스토리를 듣더니 눈이 반짝였다. 특히 우리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링크스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 바퀴 돌고 여기까지 왔다고 했더니 스코틀랜드 코스에 대한 느낌을 물어왔다. 무슨 대답을 원하길래 눈빛이 그리도 호기심 천국인지.

솔직히 말했다. 사실 좀 실망했다고. 한국에서 초록색 탄탄한 잔디에서만 골프를 치다가 링크스에서 골프를 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링크스 잔디는 정말 맘에 들지 않았고, 바람은 짜증만 나더라고….

어째 매니저는 반기는 표정으로 기다렸다는 듯 "맞다. 우리도 스코티시 링크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라며 코스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들이 정통이라는 프라이드만 강하다."

매니저의 설명을 빌자면 로열 버크데일 코스는 우리가 거쳐온 아일랜드 링크스 스타일과 가장 흡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그런 코스 스타일의 정통성은 잉글랜드에 있고, 아일랜드에서 잉글랜드식 링크스를 도입한 것이라며 콕 찍어주는 센스. 우리가 이미 아일랜드 링크스를 경험했으니 그 유사함을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플레이 하면서 이것이 잉글랜드 링크스임을 꼭 기억해 달라고….
'그래 잉글랜드 링크스는 얼마나 다른 지 보자꾸나.'

프로샵을 나서려는 우리에게 갑자기 생각난 듯 그는,
"아! 그녀… 장정… 정말 키가 작았어요."라며 손바닥을 펼쳐 대략 자기 배꼽 정도의 높이를 가늠한다.
"에… 과장이 넘 심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며 내 손을 윗배 정도까지 올려주고 나왔다.

1번 홀, 왼쪽 도그렉으로 출발. 전체 전경상으로는 전형적인 링크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구릉과 잔디 그리고 바람. 하지만 매니저의 말을 듣고 출발해서일까? 남달리 잘 다듬어진 링크스의 느낌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홀 별 독립성이 잘 확보되는 레이아웃 때문인 듯 싶었다. 홀 별 구획이 거의 구릉으로 차단되어 홀에 집중할 수 있었고, 홀 별 독립성도 뛰어났다.

코스는 거의 대부분의 페어웨이가 20yd도 안 되는 폭을 가지고 있어 페어웨이 안착이 어려웠다. 페어웨이를 둘러싸고 있는 긴 러프와 구릉들은 정말 아일랜드에서 선경험 했던 바로 그 링크스였다. 현대적이면서도 규모감이 있어 웅장한 링크스.

다만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4홀 정도부터 비를 뿜어대는 통에 정신 없이 라운드를 마쳤고, 그다지 좋은 코스 사진도, 스코어도 건지지 못했다.

비에 쫓기기도 했지만 홀간 이동도 빨라 라운드 템포가 무지 빨랐던 모양이다. 3시간이 조금 넘어 18홀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다들 비가 와서 중간에 포기하고 들어온 줄 아는 것이다.

모름지기 영국 종주 골프 투어로 향상된 것은 우중 골프 내공 뿐인가 하노라.

이다겸 칼럼니스트

[J-HOT]

▶ 직접 명함 건네는 LG 구본무 회장에 '깜짝'

▶ 가수 이지연, 결혼생활 18년만에 이혼 '충격'

▶ 이문열 "10년간 보수 우파 대변, 잘한일인가 싶다"

▶ '쌍추부부' 명의로 1000명이 기부금, 알고보니…

▶ 폴란드 상원의장 "한국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