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95년작 스페인 영화 '글로리아 두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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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연명하기 위해 창녀로 일하다 추악한 범죄조직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된 나약한 여자.다른 일자리를 찾는데 번번이 실패하는 그녀는 알콜 중독이 되지 않고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견딜 수 없게된다.

'글로리아 두케'라는 스페인 여자는 원래 매력적인 투우사의 아내였지만 남편이 황소에 받혀 식물인간이 된 후 가난과 싸워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그녀는 여자를 모멸하는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에 대항해 총을 잡는다.

스페인 영화'글로리아 두케'는 갱스터 스릴러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큰 이야기 줄기는'니키타'나'롱키스 굿나잇'처럼 혈혈단신의 여자가 범죄조직과 대결하는 액션물로 분류될 수도 있으나 할리우드 오락영화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상황

설정과 폭력 이미지를 보여준다.

95년 스페인 영화상들을 휩쓴 이 작품으로 데뷔한 아우구스틴 디아즈 야네스 감독은 좌파적인 성향이 강해 사회 모순의 단면들을 곳곳에 내비치고 있다.

기발한 이야기 구성과 지루함을 못느끼게 하는 카메라 워크는 신인답지 않은 정교함을 보여준다.

몇몇 충격적인 폭력 장면은'니키타''레옹'의 뤽 베송이나'저수지의 개들'의 틴 타란티노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뚜렷이 기억에 남을 정도다.

주연 빅토리아 아브릴은'아만테스''욕망의 낮과 밤'등 80년대 스페인 영화 주요 작품에서 낯익은 인물.

가난에 찌들고 병약해 보이는 모습으로 무거운 장총을 드는 그녀의 이미지는 날렵하고 탄탄한 육체의'니키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유형으로 남을 만하다.

“우리가 죽고나서 우리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하나의 대사가 원제.영화의 첫부분에서 범죄조직에 깊이 간여해 수사하다 죽게되는 경찰이 남긴 말이다.

결국 이 영화는 낱낱이 드러나지 않고 파묻힌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을 몸부림치듯 보여준다.20세기말의 신종 리얼리즘이라고나 할까. 〈채규진 기자〉

<사진설명>

아우구스틴 디아즈 야네스 감독의 데뷔작'글로리아 두케'.빅토리아 아브릴이 부조리에 대항하는 주인공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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