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활동으로 주목받는 두 지방 교사시인 김윤배.나태주씨

“젊은이들/비우고 떠나가/노인들만 남아 지키는/낡은 집/불조차 켜지지 않는/들창//대문가에/분꽃 몇 그루/어렵사리 불을/밝히고 있었다/어둠 속에 희미하게/웃고 있었다.”

나태주(52)씨의 시'분꽃'후반부다.젊은이들이 떠난 시골 풍경이 허전하다.그 쓸쓸한 분위기에 애써 분꽃을 등장시켜 동시적인 천진한 서정의 세계로 눈물겹게 이끌고 있다.현재 충남논산 호암초등학교 교감으로 있는 나씨는 시골만 30여년

간 찾아다니며'분꽃'같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시를 쓰다 최근 제2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그런가 하면 또다른 지방 초등학교 교사시인 김윤배(53)씨는 최근 시집'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문학과지성사 刊)를 틂쨈?두 지역 초등학교 교사시인들의 시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자연을 향한 순결한 가락과 서정이 오롯이 들어있다.

“난초화분의 휘어진/이파리 하나가/허공에 몸을 기댄다//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난초이파리를 살그머니/보듬어 안는다//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잔잔한 기쁨의/강물이 흐른다.”

수상작'기쁨'전문이다.난초와 허공과 사람이 한데 어울린 희열,깊고도 넓은 그 기쁨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가치관의 전면 해체의 시대에 직면한 오늘의 우리에게 나씨의 시들은 삶의 깊은 체험과 서정을 차원 높게 결합시켜 득의(得意)의

세계를 보여준다”는게 수상이유다.

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와 지금까지 펴낸 나씨의 20권의 시집에는'청보리 푸른 숨소리가 스민 청자(靑瓷)의 하늘'이 있는가 하면'방안 구석구석까지 밀려오는 저승의 햇살'도 들어 있다.자연과의 합일을 의심하지 않으

며 충청도의 향토적 서정을 기품있게 그려 평안도의 소월이나 전라도의 영랑,그리고 경상도의 목월과 같은 서정시의 전통을 잇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수상 소식을 접한 나씨는“너무 먼 시골에 묻혀 사는 한 미미한 잊혀진 시인에게 상이 와 부처님은 눈이 밝은 분이란걸 거듭 알 수 있다”며“혼자 있어도 결코 쓸쓸해하지 않고 많은 것들,반짝이는 것들을 아니 지니고서도 초라해하지 않는

마음의 터전을 길러야겠다”고 한다.

“서해의 작은 섬 오이도는 이 세상에 없다/나는 사라진 섬을 찾아 흙먼지 길을 간다/길은 우리들 아름다웠던 삶을 버린/매립의 욕망 더미를 뚫는다/바다 잃은 가마우지들/붉은 발을 노을에 묻은 채 물끄러미/흙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낡은

버스를 보고 있다/(중략)/가마우지가 개펄 위를 낮게 날아/붉은 해 속으로 들어간다 꿈 없이/사라지는 것들의 날개가 처연한 것은/사라진 오이도가 아직도/우리들 옆에 있기 때문이리.”

김윤배씨의 시'오이도를 찾아서'다.개발이라는 인간의 욕망에 자연이 병들고 또 인간 자체도 훼손되고 있음을 아프게 노래하고 있다.

현재 경기도안양 민백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김씨 역시 경기도 지방에서 30여년 교편을 잡아오고 있다.86년'세계의 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김씨는 그동안'숲을 숲이게 하는 것은''강 깊은 당신 편지'등 5권의 시집을 통해 자연에

풍부한 감정을 집어넣는 서정의 세계를 펼쳐보였다.

그러나 이번의 제6시집'따뜻한 말 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에는 서정이 비극적 색조를 띠고 있다.주위의 자연을 여전히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뭔가 종말을 향하는 비가(悲歌)로 들린다.인간의 무절제한 욕망이 자연의 질서.생명의 질

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슬픈 노래.거기에 시인 자신의 인위적인 지적,언어적 욕망까지 덧씌워져 순수 서정의 그윽한 세계를 가로막고 있다.그럼에도'사라진 오이도가 아직도 우리들 옆에 있다'며 시인은 처연하리 만큼 자연을 붙들고 있다.

지역 초등학교 교사 시인들의 자연을 향하는 서정적 세계가 우리 인간의 마음의 고향,그 터전을 여전히 푸르고 포근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사진설명>

30여년간 지방 초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꾸준히 자연을 향한 시를 써오고 있는 나태주.김윤배시인.서울로부터 소외되고 있으면서도 초등학생 가르치듯 순수 서정시,마음의 텃밭을 지키며 풋풋히 가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