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변호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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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변호사 수가 많기로는 미국이 단연 으뜸이다.지난해말 현재 90만명을 넘어섰고,1백만명 돌파가 시간문제다.인구 1만명당 변호사 수가 30명을 넘어선 것도 여러해 전부터의 일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변호사들은 부업(副業)을 가지고 있다.오히려 변호사를 부업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인기작가 존 그리셤도 그중의 하나다.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그 작품이 영화화 돼 떼돈을 벌어들이니 변호사 일은

안중에도 없을밖에.당연히 그의 작품에는 변호사가 주인공으로,혹은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90년대에 들어선 이후 이런 유의'법조소설(혹은 영화)'이 크게 인기를 끄는 까닭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한 선악(善惡)의 가치관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음모.부정에 대한 현대인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그중 성격배우 수잔 서랜던이 주연한'의뢰인'은 11세 소년이 동생과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러 숲속에 들어갔다가 자살을 기도하는 마피아 변호사를 발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이혼한 뒤 자식을 빼앗기고 알콜중독자가 된 신참 변호사 서

랜던이 살해위기에 빠진 소년을 보호하면서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은 법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만하다.하지만 보통사람들은 변호사에 대해 이런 느낌을 잘 갖지 않는다.

한 심리학자의 분석이 흥미롭다.법을 몰라 살아가면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고용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분노를 변호사에 대한 혐오감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은 법을 사회의 배후에 숨겨진'장치'로 보면서 변호사들은 그 장치를 조작하는 사람들쯤으로 간주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영장실질심사제 실시 이후의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변호사선임 피의자 영장기각이 변호사 없는 피의자의 그것보다 3배가 많다는 사실도'장치 조작'의 측면에서 보면 당연하다.그래서'유전(有錢) 불구속 무전(無錢) 구속'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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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따지고 보면 변호사가 조작할 수 있는 장치의 문제가 아니라 돈이 없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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